톰 조드는 가석방으로 출옥한 후 고향 집으로 돌아오지만, 오클라호마의 집과 마을은 폐허가 된 채 트랙터로 경작된 목화만이 자라고 있다. 오랜 가뭄으로 소작료를 내지 못하자 은행은 마을 사람들을 모두 내쫓고, 농민들은 캘리포니아로 오라는 지주들의 광고에 유혹되어 그곳의 포도, 오렌지 등의 과일 농장에서 과일을 원 없이 먹으면서 일을 해서 돈을 벌어 그들만의 농사를 다시 지을 수 있을 거라는 꿈을 안고 모두 떠난 뒤였다. 조드 일가도 이웃의 삼촌 댁에서 캘리포니아로 떠나기 위해 채비를 하던 중 톰과 상봉한 후 개조한 트럭에 간단한 세간과 몸만 싣고 그들의 대열에 합류한다.

캘리포니아에 갈 때는 중고 트럭을 타고 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캘리포니아에 가면 불친절한 사람들과 짭새들을 만날 거예요.
캘리포니아에 가면 겨울날의 추위와 배고픔을 느낄 거예요. - 본문 중

그토록 바라던 희망과 자유의 땅, 포도농장에는 시련과 고통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캘리포니아 드림을 가지고 떠나는 이들이 실로 어마어마했다. 한 농장에 필요로 하는 일손이 열이라면 몇천 명이 모여들고, 농장주는 일거리를 아쉬워하는 이들의 노동력을 아주 헐값에 착취하여 더욱더 가난의 구렁텅이에 몰아넣는다. 당국 경찰들과 지주들의 비인간적이고 야만적인 대우와 횡포에도 그들은 희망을 잃지 않고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일거리를 찾아 헤맨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목에 뜨거움을 느꼈던 난,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목화 농장의 캠프장에서 홍수로 인해 피신을 해야 했던 조드 일가는 무작정 떠나던 중 어느 허름한 헛간을 발견한다. 거기엔 한 아비가 누워 있고 그 아들은 먹을 것이 필요하다고, 자기의 아버지는 우유라도 먹어야 한다고 사정한다. 임신한 몸으로 가족과 힘든 여정 속에서 허황된 꿈에 젖어 늘 불평만 하다가 결국은 사산을 하게 된 톰의 누이동생 로자샨. 그녀는 말없이 그 아사지경의 남자 옆에 누워 자기의 불은 젖을 물리며 미소 짓는다.

책을 덮고 난 후에도 가슴이 먹먹했던 것은, 아마도 책이 주는 감동보다 작금의 실업문제나 불우이웃은 애써 무시한 채 나와는 무관하다고, 일이나 처지에 있어 어떤 감사와 보람을 잊고 더한 허영과 불만으로만 점철된 내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 더 했으리라.

물질 만능 시대의 생존 경쟁에서 내가 조금이라도 가진 것을 나보다 더 없는 자에게 베푼다는 것은 어쩌면 우스운 사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불어 사는 속에서 선의의 경쟁도 할 수 있는 것이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여유로움이 풍만한 세상이라면…. 생각만 있을 뿐 나부터 내 것만 챙기는 것은 이기심 가득한, 덜 성숙한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