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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로 살아간다는 것
2007년 09월 01일 (토) 주현경 기자 juyuwoo@cufs.ac.kr

2004년 5월 3일 서울. 오후 4시경 버스를 타고 가던 중이었습니다. 만원 버스는 아니었지만 앉을자리는 없고 간간히 서있는 사람이 있는 평범한 버스 안이었습니다. 그 때 저는 서있는 상태였고, 제 바로 앞에 미인으로는 보이지는 않았지만 평범해 보이는 아니 그보다는 조금 더 귀여워 보이는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여자 분이 앉아있었습니다.

몇 정거장을 거쳐 가던 중, 60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보이는 한 할머니께서 탑승을 하셨습니다. 그리곤 제 옆에 서서 앉아 있는 여대생을 바라보시더군요. “아이고, 허리야.” 그렇게 할머니께서 인기척을 내셨습니다. 그제야 할머니가 자리 없이 자신 앞에 서 계시단걸 알아챈 여학생은, “할머니, 이리 앉으세요.”하며 일어나려는데, “됐어 아가씨. 그냥 앉아있어.” “아니에요, 저 조금 있으면 내리거든요. 괜찮으니 앉으세요.” “아니야, 나도 이제 곧 내려. 앉아있어.” “그래도 앉으세요. 힘드실 텐데.” “아니야, 아니야, 힘든 건 젊은 사람들이 더 힘들지. 난 괜찮으니 앉아있어.”그렇게 여러 번의 제의에도 불구하구 할머니께서 계속 거부를 하시니 그 여학생도 하는 수 없이 앉아서 창밖을 내다봤습니다.

그 때 “에구... 쯧쯧쯧 요즘 젊은 것들은 싸가지가 없어, 예의라는 걸 몰라요.” 버스안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할머니와 여학생으로 몰렸습니다. 그 여학생은 얼굴이 붉어지며 “아니 할머니 제가 앉으시라고 말씀드렸잖아요.” 당황한 그녀가 이렇게 대꾸를 하자 “싸가지 없는 것 같으니라고, 노인네가 앉아있으란다고 엉덩이 뭉개고 앉아있는 꼴이란.” 할머니의 그 한마디로 당황하는 사람은 여학생 뿐 아니라 저를 비롯해 버스 내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었죠. 앉으라는 권유를 최소 세 번 이상 했는데도 완강히 거부한건 할머니였으니까요. “아니, 할머니! 어떻게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여학생이 대꾸하자 기다렸다는 듯 “뭐? 이년 봐라, 아주 노인네 미친 사람 취급을 하는구먼. 빌어먹을 년.” “허.. 제가 언제 미친 사람 취급을 했어요? 저는 분명히 계속 여쭤봤었잖아요.” 그렇게 5분 정도를 서로 실랑이 하며 그 할머니는 있는 욕 없는 욕 다해가며 여학생을 몰아세웠지요. 그러더니, “됐어, 이 망할 년아! 내려! 너같이 싹수 훤한 것들은 혼쭐을 나야 돼. 기사양반 차 좀 세워.” 그러자, 여학생도 나름대로 당황하고 화도 났기에 일어나 따라나섰습니다.

잠시 후 기사 아저씨는 앞문을 열어주었습니다. “빨리 내려! 이 빌어먹을 년.” 그리곤 할머니는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그렇게 그 여학생도 앞문에 다다른 찰나 기사 아저씨는 그대로 버스 문을 닫고 출발하더군요. “아저씨! 왜 그냥 출발하세요?” 기사 아저씨께서는 잠시 동안 사이드 미러를 바라보시곤, “아가씨, 저 뒤에서 계속 따라오는 봉고차 못 봤어? 저 노인네 타기 조금 전부터 버스 뒤에서 졸졸 쫓아오더라고.” 그 순간 버스 내에 있던 승객들은 남녀불문 나이 불문하고 모두 당황스러워 했습니다.

아저씨는 뒤이어 “허허. 요즘 세상에 아직도 저런 사람들이 있나? 아가씨 큰일 당할 뻔 했어. 조심해서 다녀.” 그 후 전 뒤를 돌아다봤습니다. 아니, 돌아 볼 수밖에 없었죠. 버스가 출발한지 몇 초가 지난지라 바로 앞은 아니었지만, 분명 봉고차가 할머니를 태우고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있더군요. 그렇게 납치해 가고 나선 윤락가로 팔아넘기겠죠. 자신의 누나, 여동생, 여자 친구, 본인이 당사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저 따위 파렴치한이 활개를 칠 수 없도록 도와주십시오.

얼마 전 어느 인터넷 사이트에서 읽은 글이다. 아직도 저런 방법으로 여성을 납치해 성매매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그저 놀랍고 분개할 노릇이다. 불법성매매현장, 몇 십 년 전에나 들어봄직한데 아직도 존재한다는 인신매매, 육아퇴직... 그러한 가운데에는 항상 여성들이 주인공이었다.

왜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여성차별이라는 말이 수없이 난무하고 있을까? 여성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가장 드러나는 문제는 직장에서의 그것인 것 같다. 실제로 필자 역시 새로운 일을 해보고자 이곳저곳의 문들 두드려보았다. 그런데 면접조차 볼 기회도 주어지지가 않았다. 문제는 나이였다. 물론 전문직이라면 나이가 많건 결혼을 하건 본인이 원할 경우에는 충분히 일을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본인의 의지와 달리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우리나라 여자들은 스물여섯이 넘으면 정신력이 나태해 지고 업무 수행능력이 현격히 떨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그 나이가 넘으면 직장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부적응자로 변하는 것일까? 남성에 비해 유독 여성에게만 나이제한이 심한 이유를 대부분의 회사들은 결혼과 육아 문제를 든다. 그럼 왜 여성들은 결혼을 하고 나서 직장에 폐를 끼칠 정도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일까? 예전에 비해서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제도적인 문제가 가장 큰 것 같다.

요즘 TV에서도 많이 나오는데, 결혼을 하고 자녀를 둔 직장여성들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가 바로 수유문제이다. 직장 내에 수유실이 따로 없기 때문에, 근무시간동안 퉁퉁 불은 젖을 상사 눈치봐가며 화장실에서 짠다고 한다. 쉽게 말해, 내 아이에게 먹일 밥을 화장실에서 만드는 것이다. 시어머니나 친정 엄마에게 아쉬운 소리 해가며 아이 맡기고 나와서, 금쪽같은 내새끼한테 먹일 도시락을 화장실에서 만들고 그렇게 수유기를 거쳐 어느 정도 아이가 자라면 엄청난 금액을 주고 보육시설에 맡기게 된다. 아이의 사회성 발달이나 교육만을 목적으로 보육시설에 보낸다면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은 없다. 그러나 엄마가 직장에 나가 있을 동안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서 갓 백일지난 아이를 종일반에 맡기는 엄마들도 적지 않다.

얼마 전 청와대에서는, 현재 보건복지부가 추진 중인 직장 내 모유 수유실 설치 캠페인의 일환으로 청와대 안에 여직원들의 모유 수유를 할 수 있는 방을 마련해 주었다고 한다. 모유 수유실 뿐 아니라, 직장 내 보육시설 운영 등의 제도개선을 해 준다면 우리 여성들도 결혼과 육아와 직장생활을 당당히 병행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여성들 자신이 ‘난 나약한 여자니까’라는 생각을 버리고, 자기 스스로를 지키며 당당히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혹자는 여성차별은 여성 자신이 만드는 것이라고도 말한다. 신체구조상 여자가 남자보다 힘이 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자니까, 여자라서, 여자잖아 하는 식의 생각은 부디 버리시기를 바란다.

우리 학교에는 직장생활과 가사 그리고 학업을 동시에 척척 해내는 주부들이 많다. 이제 막 결혼을 한 직장인이자 학우의 한 사람으로서 그들에게 존경을 표하는 바이다. 하루 빨리 제도적인 개선이 이루어져서 당당한 아줌마, 당찬 여성, 우리 모두가 알파걸이 되는 그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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