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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비밀상자 1
2007년 10월 01일 (월) 서은희 기자 silvereh@hanmail.net

“아빠, 나의 하늘 1”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작은 비밀상자를 가지고 있다. 혼자만 간직하고 있는, 비밀이라고 이름 하기에도 너무 소중해서 꺼내보기도 아까운 그런 비밀상자. 사람들은 절대로 잊고 싶지 않은 기억들을 저마다의 방법으로 자기만의 비밀상자에 넣어준다. 자신만의 체취를 담아 힘들 때나, 기쁠 때나, 외로울 때.. 이렇듯 감정의 변화가 생길 때 꺼내보는 그런 비밀상자. 사람들은 자기의 기억을 상자 속에 꾹꾹 눌러 담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상자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다. 그래서 모두들 가장 소중한 기억만을 비밀상자에 담아둔다.

여기 딸을 지극히 사랑하는 아빠와 그런 아빠를 세상 누구보다 믿고 따르는 딸의 이야기가 있다. 그들의 비밀상자 속에 살짝 들어가 보자.

1980년. 약간의 쌀쌀한 기운이 감도는 어느 가을날의 아침. 서울의 한 작은 산부인과에서 유난히도 작은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여자아이라는 사실을 의사를 통해 확인한 아이아빠는 무심한 하늘을 탓하며 그 즉시 포장마차로 갔다. 한숨을 안주삼아 소주를 들이켰다. 큰애, 둘째애도 딸. 이번에 태어난 늦둥이까지 딸. 총 딸이 셋이 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형제자매 없이 혼자 자랐다. 그래서 이번에 태어난 셋째 아이는 흔히 말해 대를 잇는 아들이길 바랬다. 동네에서 산모의 배만 보고도 아들딸을 구분한다는 용하다는 노인들 모두 아들 배라며 미리 축하를 했기에 충격이 더 컸다.

한참을 술잔을 기울이던 그는 잠시 잊었던 아내 생각이 났다. 늦은 나이의 출산이라 더 힘들었을 테고 딸인 것을 알고 본인보다 더 실망하고 있을 아내 생각을 하니 그만 일어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터벅터벅 병원으로 향하는 무거운 발걸음이 그를 짓눌렀고 약간은 흔들리는 정신을 다잡으며 병원에 도착했다. 막상 도착하니 자신을 찾고 있을 아내 때문에 마음이 다급해졌다. 서둘러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술 냄새로 인해 담배도 한 대 태웠다. 다소 빠른 걸음으로 병실에 다가서는데 멀리서부터 어디선가 행복에 겨운 웃음소리가 났다.‘어디일까?’궁금해 하며 부인의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웃음의 출처가 그의 처와 두 딸임을 알 수 있었다. 중학생인 큰딸이 학교를 마치자마자 둘째를 데리고 병실을 찾은 것이다. 낙담하고 있을 꺼라 생각했던 그의 아내와 두 딸이 그리도 행복한 이유는 바로 그의 셋째 늦둥이 때문이었다.

사실 태어났을 때 참 못생겼었다는 언니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알고 있었다. 아무리 아닐 거라고 우겨보려 해도 나를 낳은 엄마조차도 새까맣고 너무 작아서 실망스러웠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런데 아빠만은 아니었다. 아빠는 내가 너무 예뻐서 눈이 부셨다고 했다. 아빠를 믿고 싶지만 내겐 앨범이 있다. 어릴 적 사진을 보면.. 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3년 후, 아이아빠의 생활은 완벽히 변했다. 50이 다 돼서 얻은 늦둥이의 재롱에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퇴근 후 집에 총알같이 들어오기 바빴다. 다른 딸들은 그런 아빠의 변화에 이제 익숙해진 듯 보였으나 마음속으로 질투가 나는 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때때로 막내의 작은언니는 가족들 몰래 살짝 꼬집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막내는 울기는 커녕 함박웃음을 지어 질투 많은 작은언니 까지도 자기편으로 만들어버렸다. 사실 막내의 재롱은 보통 사람들도 놀랄 정도로 애교가 있었고, 아프지 않은 이상 잘 울지도 않고 늘 웃었다. 또한, 작게 태어나 걱정했던 것에 비해 잘 먹고 건강했으며 밤에는 한 번도 안 깨고 아침까지 자서 엄마를 고생시키지도 않았다. 이웃들은 이런 것을 보고 딸이라 미워할까봐 스스로 조심하는 것이라고 농담을 하곤 했다.

작은언니가 어릴 때 참 자주 아프고 잠도 잘 못자서 엄마아빠를 너무 힘들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까지 그럴까봐 무척 걱정했다고 한다. 그걸 나는 아기 때부터 알았던 것일까? 웬만한 일엔 울지도 않고 잘 먹고 잘 자고 해서 가족들의 사랑을 더욱 받았던 것 같다.

시간은 흘러 흘러 어느덧 딸은 여섯 살이 되었다. 그러나 딸에게는 두 가지 나쁜 버릇이 있었다. 한 달 후면 유치원에 들어가는데 그때까지도 어른들께 반말을 사용했으며 아침, 점심, 저녁까지도 꼬박꼬박 아빠가 먹여줘야만 잘 먹는 습관이 있었다. 물론, 아빠는 점심시간 역시 회사에서부터 총알같이 달려와야 한다. 그러나 딸이 밥을 혼자 먹지 않는 이유는 그만의 이유가 있었다. 다섯 살이 되던 해, 밥을 혼자 먹는 습관을 길러줘야 한다는 아이엄마의 조언에 따라 딸이 밥을 처음으로 혼자 먹던 날, 둘째아이와 숟가락 장난을 하다 뜨거운 국이 그만 막내딸의 왼쪽 팔에 닿은 것이다. 그 순간을 아빠는 잊지 못한다. 하얗게 질린 온가족과 딸의 찢어지는 듯 한 울음소리. 미안함과 속상함에 밤잠을 설쳤던 그는 그 이후, 밥은 자신이 꼭 먹여줘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굳게 믿고는 있었지만 내심 단체생활에 대한 적응 또한 아빠로써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딸은 가족들의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선생님께 꼬박꼬박 존댓말을 사용했으며 점심 역시 혼자서 잘 먹었다.

친구들한테 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도 아빠가 밥을 먹여줬다고 하면 다들 놀라곤 한다. 회사에 다니시는 아빠가 부지런히 집으로 오셔서 점심까지 같이 먹고, 유치원을 가면서 점심만 혼자 먹고 아침저녁은 꾸준히 아빠의 도움을 받았다. 내가 생각해도 좀 웃음이 나면서도 내가 받은 지극한 사랑에 가끔 그때가 그립다.

딸의 학교생활 역시 순탄했으나 때로는 아빠 말을 너무 잘 들어서 아빠를 미안하게 만들기도 했다. 늘 조잘조잘 얘기하는 걸 좋아하는 딸은 언제나 아빠가 이야기대상 1순위였다. 또래보다 한참 작아 늘 1번을 도맡아하던 딸이 이제는 3번이라며 폴짝폴짝 뛰기도 했고 친구들 얘기, 선생님 얘기 모든 것이 딸에게는 흥미로운 이야기꺼리였다. “아빠, 오늘은 내 짝꿍이 나보고 조그맣고 애기 같다고 해서 한 대 때려줬는데 선생님이 그걸 보셨어. 그래서 짝이랑 나랑 한 시간 동안 손들고 서있었어.” 친구가 먼저 잘못 한거라고 얘기하지 그랬냐는 아빠의 물음에 딸은 천진한 표정으로 대꾸한다. “아빠가 선생님은 아빠엄마랑 똑같다고 그랬었잖아. 아빠엄마한테 말대꾸하면 안 된다고도 했었고, 그래서 꾹 참았어.” 늦둥이라 버릇없이 키우면 안 된다고 생각한 그는 항상 예절에 대해 가르치느라 바빴다. 어른 공경하기, 친절한 행동 등.. 어디 가서든 다른 이에게 혼나거나 버릇이 없다는 소리를 들으면 그의 마음이 더 아플 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또한, 유난히 마음이 여려 잘 우는 막내가 누가 놀리거나 하면 울지 말고 한 대 때려주라고 얘기한 것 또한 후회가 되었다.

같은 해, 위태위태하던 아빠의 사업이 그만 공중분해 되고 말았다. 아빠가 밀어주는 나무그네 타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다는, 막내딸이 좋아하는 작은 정원이 있는 집에서 조그마한 방 두칸이 있는 산동네로 이사를 가던 첫날. 아내와 큰딸, 둘째딸의 한숨소리에 아빠는 초라해졌고. 막내딸의 그네 하나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 때, 막내딸이 아빠의 목을 껴안으며 한 한마디에 아빠는 다시 힘을 얻는다. “와~ 방 진짜 귀엽다. 나 이제 혼자 안자고 아빠랑 잘래. 그래도 되지?”

비록 어렸지만 나또한 그때의 집안사정을 대충은 알고 있었다. 늘 퇴근 시에는 내가 좋아하는 군고구마, 아이스크림, 사과 등 군것질거리를 한 아름 사오시던 아빠가 어느 날부터 퇴근이 점차 늦어지고... 그와 함께 커져만 가는 엄마의 한숨소리, 웃음이 많던 언니들의 걱정스런 표정을 왜 몰랐겠는가. 또한, 그리 크진 않았어도 내가 키우는 꽃도 있고 매일 한번 씩은 타던 나무그네가 있는 집에서 가족들이 앉기만 해도 방이 꺼질 것 같은 집이 나라고 좋았을 리 없다. 그렇지만 아빠의 고개 숙인 모습은 정말이지 가슴이 너무 아팠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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