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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요리할 수 있다
‘라따뚜이’ (Ratatouille, 2007)
2007년 11월 01일 (목) 박찬 기자 joanstrife@cufs.ac.kr

   
▲ 주방에서 사라져! 라고 외치고 있는 듯한 내용의 ‘라따뚜이’ 포스터
바늘로 쿡 찌르면 왠지 녹색 피가 나올 것 같은 나라도 2007년 들어 영화관에서 주책 맞게 소리 없이 펑펑 울게끔 해 준 두 영화 중에 하나였다. 다른 하나의 영화는 연기의 정점에 도달한 ‘윌 스미스’와 그의 제치를 꼭 닮은 친 아들인 ‘제이든 스미스’가 주연한 ‘행복을 찾아서’ (The Pursuit Of Happyness, 2006)였는데, 실존하는 ‘크리스 가드너’를 연기함으로서 사소하고 작은 기회 하나가 나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는 실화를 바탕으로 뭉클한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해 주고 덤으로, ‘매일매일이 불행하다고 푸념하는 나는 사실 정말 행복한 놈이었다.’라는 생각에 감사하게끔 해준 휴먼 드라마였다.

그에 비하면 ‘라따뚜이’는 정말 어이없는 이야기다.
첫째, 쥐가 말을 한다. 둘째, 쥐가 두발로 걷는다. 마지막으로 정말 말도 안 되는 셋째, 쥐가 요리를 한다. 픽션의 극치를 달리는 이 3D 애니메이션이 과연 관객들에게 무엇을 전해 주었길래 내가 찾아간 극장에서 나 뿐만 아니라 모든 관객들의 소리 없는 울음을 끌어낸 것일까.

그저 ‘애니메이션’이라고 해서 아이를 대동해 극장을 찾은 관객들이라면 이 영화는 아이들의 범접할 수 없는 감성에 접근하기엔 오히려 꽤나 지루한 이야기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른들에게는 정반대였을 것이다. 젊든, 나이가 들었든 살아가면서 뭔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한계라는 벽들에 부닥쳐 내가 정정 원했던 나의 모습을 포기해야만 했던 기억, 언제인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해도 그런 경험의 흔적이 마음 속 깊은 한 쪽 구석에 남아있는 어른들이라면 이 영화가 주는 큰 위안에 대리만족이든, 새로운 감회든 가슴 벅참에 눈물지었거나 최소한 코 끝 찡함은 느꼈으리라 감히 단언한다.
 

1. 나는 한낱 미물인 ‘생쥐’일 뿐이었다.

   
▲ 이야기의 주인공인 도시 쥐, ‘에밀’. 유리창을 깨 부시면서 책으로 행글라이딩을 즐기는 ‘에밀’의 요란한 일상이 영화 시작부터 요란하게 전개된다.

프랑스의 집 쥐인 ‘에밀’은 결코 평범한 쥐가 아니었다. 네 발로 걷지 않고 항상 사람처럼 두 발로 걸으며 쓰레기통에서 뒤져 얻어낸 썩은 음식을 먹지도 않는다. 쥐의 운명, 쓰레기통이든 집구석이든 먹을 것이 있는 곳이라면 가리지 않고 어디든 뒤지기 위해 소굴을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페스트와 같은 온갖 괴질이나 뿌리고 다니는 쥐와는 다르다. ‘에밀’은 파리 제일의 요리사인 ‘구스또’의 ‘누구나 요리할 수 있다’는 마인드에 본능적으로 어마어마한 감명을 받는다. 요리 그리고 요리가 전해주는 맛이라는 것을 음미하는 것에서 찾아오는 행복을 ‘구스또’를 통해 알게 되었고 그의 방송과 책을 통해 이미 인간의 말을 알아듣고 글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매일같이 시궁창 인생을 살면서도 ‘에밀’의 본능은 요리와 ‘맛’을 원하고 있었다.

   
▲ 굴뚝의 연기에 싱싱한 버섯을 훈제로 굽다가 머리위에 벼락불이 떨어져도, 오히려 벼락불에 구워진 레어(RARE) 버섯구이에 더 흥분한다.

하지만 현실은 생쥐. 현실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지 ‘에밀’은 주거지였던 ‘할머니’의 집에서 ‘할머니’의 가공할(?) 사격을 피해 파리 시내로 우연히 흘러들게 된다. 글쎄. 흘러들어갔다는 표현보다 무언가에 끌렸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 다년간 훈련받은 어지간한 군인들보다도 높은 명중률을 자랑하는 할머니의 사격솜씨는 이 할머니의 과거와 ‘혹시 아들이 007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게끔 한다.

먹을 것을 찾아다닐 수밖에 없는 운명, 그 순리대로 사람을 피하며 생쥐대로 살다가 ‘끌려간’ 파리의 시내 한복판에서 새로운 ‘에밀’의 삶이 시작된다.


2. ‘요리하는 생쥐, 그리고 요리하는 척하는 사람’

   
▲ ‘링귀니’와 ‘에밀’의 첫 만남. ‘에밀’의 절대적인 요리 실력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국자를 휘둘러 홈런볼(과자가 아니다)로 만들어 버렸을 지도 모른다.

‘에밀’이 우연히 끌려들어간 곳은 그토록 염원했던 ‘구스또’ 식당. 때마침 신참내기 요리사인 ‘링귀니’와 마주치게 되고 사람이 요리하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는 ‘링귀니’와 천부적인 요리 실력을 가지고 있고 너무나 요리를 사랑하는 ‘에밀’은 눈먼 사람이 앉은뱅이를 업고 다니듯 서로 협력하여 각자의 목적을 이루어 나간다. 절대미각을 자극하는 요리를 하나하나 선보이는 ‘링귀니’와 ‘에밀’. 하지만 모자 속에 숨어 ‘링귀니’의 수족을 컨트롤 하면서 요리를 하는 것은 ‘링귀니’가 감당해야 할 한계였고 생쥐인 자신이 사람의 일을 갈망해서 보이지 않는 요리사로서 살아간다는 것도 무시 못 할 벽이었기에 서로를 도우면서도 심각한 괴리에 빠져 둘 다 갈팡질팡 하게 된다.

하지만 이쯤 되면 나타나주는 대마왕. 우리는 여지껏 많은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심적인 갈등을 겪고 어색해져 있을 때만 척하고 나타나서 위기를 던져주는 마왕들을 많이 보았고 마왕이 나타날 때면 주인공들의 화해에 따른 해피 엔딩을 기대해 볼 수 있는데 여기서는 음식에 대한 혹독한 비평으로 여러 식당들을 문 닫게 했던 ‘앤톤 이고’라는 비평가가 대마왕으로 등장하고 ‘링귀니’와 ‘에밀’의 요리들이 달리고 있는 상승세에 브레이크를 걸겠다는 생각으로 ‘링귀니’를 찾아온다. 나를 만족시킬 수 있을 만한 음식을 내 놓으라는 어려운 요청과 함께.

   
▲ 매부리고, 깡마른 몸매, 눈에 띄는 다크서클로 보아 하니 ‘이고’ 손님께는 ‘스머프 수프’가 적격일 듯 하옵니다.

갈등에 갈등을 겪고 있던 ‘링귀니’와 ‘에밀’은 악당을 물리치지 위해 다시 마음을 뭉치지만 진실은 결코 왜곡될 수 없고 언젠가는 밝혀지는 법. ‘링귀니’는 식당의 직원들에게 ‘에밀’의 정체를 솔직하게 얘기하고 함께 해 줄 것을 제안하지만... 모두가 속았다는 생각에 행주를 던져버리고 그에게서 등을 돌려버린다. 사랑하는 사람마저도 눈물을 쏟으며 그에게서 돌아서는 상황. 주방 밖에서는 대마왕이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주방을 향해 독사눈을 이글거리고 있고 요리를 할 사람은 아무도 남지 않아버리게 되었을 때, 자신의 아들에게 요리가 얼마만큼이나 소중한지를 위의 장면들로 느낀 ‘에밀’의 아버지가 ‘소독된’ 생쥐군단을 주방에 대거 투입하고, 잠시 돌아섰다가 눈화장 고치고 주방에 다시 뛰어 들어온 ‘링귀니’의 연인까지 합세하면서 절대적인 비평가 ‘앤톤 이고’를 납작하게 눌러버릴 초유의 요리를 준비하게 되는데...

   
▲ 울며 달아나던 ‘링귀니’의 연인인 ‘콜렛’은 서점에 걸린 ‘구스또’의 ‘Everyone can COOK!’을 보고는 ‘구스또’의 평등철학을 늘 자랑스럽게 외쳤던 자신을 돌이키며 눈 화장을 고치고 다시 ‘링귀니’의 품으로 달려간다.


3. ‘누구나 요리할 수 있다.’

이 영화가 전해주려는 단 한가지의 슬로건은 바로 ‘누구나 요리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남녀노소와 귀천에 상관없이, 재능이나 실력에 상관없이 요리가 즐겁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을 영화를 보는 내내 알 수 있겠지만 사실 영화가 전해주려는 진정한 의미는 ‘누구나 요리할 수 있다’가 아닌, ‘누구나 할 수 있다’ 일 것이다.

소재를 택하려 했다면 굳이 제작비가 엄청나게 드는 애니메이션을 택하지 않았어도 될 것이다. 주인공을 택하려 했다면 굳이 생쥐를 택하지 않았어도 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등장하는 주인공은 분명히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의인화 된 생쥐임이 틀림없고 그렇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표현할 수 없는 장면묘사들을 애니메이션으로 적절히 소화했다. 그렇다면 왜 애니메이션을 써 가면서까지 생쥐를 택해야 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요리라는 행위에는 주방이라는 장소가 필연적으로 대두되는데 그 필수요소인 주방에 일반적으로 적대시되는 이미지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흔히 바퀴벌레나 생쥐를 떠 올리곤 하는데 만약 지난 1996년에 개봉된 코미디물인 ‘죠의 아파트’라는 작품의 평가를 제작진이 참고했다면 CGI 기술이 남자가 아이를 낳는 영화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절대적이라 하더라도 두 번 다시는 바퀴벌레가 주연이 되는 영화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므로 소재의 선정에서 생쥐가 당첨이 되었다.

   
▲ 바퀴벌레가 주연한 영화 ‘죠의 아파트’. 이 영화를 보고 기호식품이었던 번데기를 2년쯤 먹지 못했는데 돌도 씹어 먹을 만한 나이였던 나에겐 굉장한 고통이었다.

작가와 감독은 의인화된 생쥐가 전해주는 가능성, 즉 ‘나도 이렇게 할 수 있었다.’라는 경험담 같은 이 영화에 관객 하나하나가 자신의 상황을 대입해 보기를 권유한다. 생쥐 ‘레미’에게는 오직 요리를 하고 싶고 쓰레기통이나 뒤지는 평범한 생쥐가 아닌 맛있고 아름다운 요리와 같은 인생을 살기를 바랬을 뿐이었다. 그것을 나에게 대입해 보자. 나는 과연 ‘레미’처럼 그저 생각만 해도 즐겁고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는지, 그것이 현실의 벽에 막혀서 진행 중에 그쳤던 적이 있었는지, 그 잘난 현실이라는 벽이 내 간절하고 또 간절했던 바램과 꿈을 소원해지게 만들어 자칫 내가 그것을 잊었던 것은 아닌지.

만약 발견했다면 여기서 ‘누구든 요리할 수 있다’라는 ‘구스또’의 말이 ‘레미’에게 힘과 영감을 준 것처럼, 우리 자신은 ‘누구든 할 수 있다’는 영화가 외치는 소리로 동기가 부여되는 그런 가슴 뭉클한 경험을 영화는 주려고 하고 있다. 만약 자신의 그런 모습이 발견되었다면... 그런 추억과 기억만큼 스스로를 코끝이 시릴 정도로 뭉클하게 만들며 눈물짓게 할 만한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기에.

영화 속에 등장하는 ‘레미’의 아버지는 ‘레미’가 생쥐로서의 삶을 그저 그렇게 살아가길 희망하지만 ‘레미’가 요리로서 그렇게 웃음 짓는 모습을 보며 결국 ‘레미’를 이해하고 도와주는 장면은 ‘할 수 있다’라는 마음가짐이 언젠가 결국 나에게 어떤 행복을 주는지 더욱 자세하게 말해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가족의 반대, 주위의 만류, 겉으로 어울리지 않는다 내지는 상황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반대의 기를 드는, 나를 아껴주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의 의지가 확고하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미치며 즐거워할 때 언젠가는 나의 편에 서 줄 것이다 라는 믿음을 이 영화는 전해 주기도 한다.

   
▲ 아버지와 만나는 장면에서 두 부자가 나누는 대화는 서로간의 사랑, 이해가 듬뿍 녹아있어 굉장한 감동을 준다.

 

4. ‘라따뚜이’

그렇다면 이렇게 해서 전개되는 이야기의 결론은 어떨까? 이제 가혹한 비평가인 ‘앤톤 이고’와 ‘링귀니+레미’의 대결만이 남게 되었다.

모두가 이해하고 협동하는 상황이라면 사실 대마왕의 공격쯤은 우습다. 그러나 ‘레미’는 대마왕을 힘으로 쓰러뜨리려 하지 않고 즐거움으로 융화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프랑스의 시골음식인 초라한 ‘라따뚜이’를 요리한다.

   
▲ 호박, 오이, 피망 등의 갖은 채소가 들어간 프랑스의 시골요리인 ‘라따뚜이’는 원래 사진과 같이 채소만을 사용한 스튜에 가깝다. 예전에 시식했으나 솔직히 두 번은 먹고 싶지 않았다.

영화에서는 각종 둥근 채소를 얇게 저며 소스를 바른 팬 위에 차곡차곡 얹고, 그것을 오븐에 바삭하게 구워내 향기로운 소스로 마무리 한 ‘라따뚜이’가 ‘앤톤 이고’에게 대접되고, 그것을 맛 본 ‘이고’는 어렸을 적 고향에서 어머니가 해 주시던 ‘라따뚜이’의 잊을 수 없는 맛이 되새겨지는 듯 한 경험에 놀라 비평을 맘껏 적으려던 팬을 떨구고 만다.

주방장에게 잘 먹었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던 ‘이고’. 하지만 ‘콜렛’은 ‘이고’에게 ‘주방장을 만나려면 손님들이 다 나가실 때 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전했고 ‘링귀니’는 식당의 문을 내리고 주방으로 ‘이고’를 데리고 들어가 ‘당신이 맛 본 󰡐라따뚜이󰡑는 생쥐가 만든 것’이라는 것을 거짓없이 솔직하게 하나하나 알려준다. 그리고 처음엔 농담이려니 했던 ‘이고’는 아무 말 없이 진지하게 모든 얘기를 듣더니 잘 먹었다는 한마디만을 남기고 나가버렸다.

‘이고’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생쥐가 한 요리를 먹고 그만한 감동을 받았던 ‘이고’였다. 인정하기는 싫었겠지만 ‘이고’는 ‘구스또’의 요리와 그의 열린 마음, 평등철학이 요리에 담겨 있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려주었고 그런 열린 마음 때문에 맛이 떨어진다 라고 혹평해 ‘구스또’를 상심케 해 죽게 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잘 먹었다’라는 말 외에 그 자리에서 더 이상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적잖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날 ‘앤톤 이고’는 요리 비평가로서의 자신을 철저히 다듬음과 동시에 그의 비평 인생에 여지껏 있을 수 없었던 호평의 기사를 냄으로서 그런 고민과 망설임들을 비평가답게 한 번에 날려버렸음을 전해준다.

   
▲ ‘스머프’는 재료가 비싸서 말입니다.


5. 에필로그

‘라따뚜이’는 원어로, ‘Ratatoulie’로서 쥐를 뜻하는 ‘Rat’과 휘젓다를 뜻하는 ‘a toulie’가 합쳐져서 요리의 의미도 있지만 ‘쥐가 (스튜 등을)휘젓다’ 즉, ‘쥐가 요리한다‘ 라는 뜻을 영화적으로 가지고 있다.

‘누구나 요리할 수 있다.’라는 ‘구스또’의 말을 신조로 하여 요리에 대한 열정을 불태운 ‘레미’와 자신의 명예를 위해 진실을 왜곡하지 않고 매정한 비평가인 ‘이고’에게 데쉬한 바보 같은 ‘링귀니’의 만남은 영화 속에서 어쩌면 필연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서로 그런 성격의 만남들이 이야기의 전개와 감동을 주기 위해 당연히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절대 허구의 3D 애니메이션 영화 속에서만 일어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필자와 당신,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으며 그것은 생쥐와 내가 아닌, 어떤 다른 존재와 나의 이야기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누가 했느냐가 아니다. ‘무엇을’ 했느냐 일 것이다.

‘누구나 요리할 수 있다’는 곧, ‘누구나 할 수 있다’라는 것을 말한다.

이 영화를 보았든 아니든 난 당신에게 감히 오늘 당장 DVD로 ‘라따뚜이’를 볼 것을 권한다. 그리고 절대 잃지 않기를 바란다. 당신이 정말 즐겁게 하고자 했던 일에 현실의 벽 따위로 브레이크가 걸려 있다면 그것을 다시 해내기 위해 스스로에게 ‘누구나 요리할 수 있다’라는 주문을 거는 것을 잊지 않기를.

‘앤톤 이고’가 ‘레미’의 평범한 ‘라따뚜이’를 맛본 후 썼던 평론을 끝으로 하여 이야기를 마친다.

   
▲ ‘이고’는 그날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이 파리에서 평론가를 하고 있다는 감사함에 더욱 더.

어떻게 생각하면 비평이란 직업은 굉장히 쉬운 일이다.
위험 부담이 없을뿐더러,
우리의 평론만 목 빠지게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젠 척할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쓰기에도, 읽기에도 재미있는 나쁜 말들을 잔뜩 적어 놓는다.
하지만 쓴 소리를 잘하는 우리 평론가들은 어쩌면 겉모습만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작은 것들이 어쩌면 우리의 비평보다 더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비평가들이 간과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새로운 것에 대한 발견과 방어이다.
세상은 새로운 재주나 창작물에 관대하지 못하다. 그들은 친구가 필요하다.
나도 어젯밤에 새로운 경험을 했다.
정말 기가 막히게 맛있는 소스가 뿌려진 아주 특별한 식사!
음식이나 주방장 모두에 관해 내가 느끼고 있었던 추잡한 선입견들은
모두 배제한 재 얘기하도록 하겠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므로!
솔직하게 말해, 예전에는 믿지 않았다.
‘구스또’ 주방장의 유명한 말인, ‘누구나 요리할 수 있다.’는 말을.
하지만 지금은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모든 사람이 예술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예술가는 어디서든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구스또’에서 요리하고 있는 그 비천한 요리사를 상상하면 이 평론 자체가 정말 힘들겠지만
감히 말한다.
그는 프랑스의 그 어떤 요리사보다도 훌륭하다고!
다시 ‘구스또’에 가고 싶다. 더 먹고 싶어서 못견디겠다.

   
▲ ‘구스또’의 새로운 식당인 ‘링귀니’와 ‘레미’의 ‘라따뚜이’ 식당에서 평론가를 그만두고 요리를 즐기는 ‘앤톤 이고’가 마지막 장면에 등장한다.

부디 여러분에게 한 때 ‘벽’이라고 불렸던 존재들로부터 이러한 말을 듣기를 희망한다. 열정에 사로잡혀 포기할 줄 모르는 여러분들을 미치도록 원하는 그런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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