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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백수로소이다
2007년 11월 01일 (목) 박한나 기자 aa@cufs.ac.kr


회사를 그만둔 지 이제 꼭 한 달입니다.

뛰쳐나올 때만 해도, 정말 이것도 해보네, 저것도 해보네, 아주 부푼 꿈을 안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현재 제 퇴사 생활 한달 째의 가장 커다란 감투는 "백수"라는 이 두 글자입니다.

불과 얼마 전, 백수생활을 하고 있던 친구 녀석이, 항상 전화해서 나오라고 사정사정을 해도 안 나와 얼마나 야속해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그 녀석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겠으니, 어쩌면 좋습니까.
 

백수가 되어보니, 백수도 되기 위한 단계가 있더군요.

첫 번째, 분명 밤을 샜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그 기상시간엔 눈이 떠진다.

퇴사한 다음날, "아, 드디어 그 지긋지긋한 신도림역을 안가도 되는구나"라는 안도감에 얼마나 신났던 지요. 그래서 밀렸던 온갖 드라마란 드라마는 죄다 몰아서 보기 시작합니다. 아, 회사 다니기 전에는 며칠 밤새는 것도 끄떡없더니만, 이젠 왜 이렇게 11시만 되면 눈이 감기는지. 어떻게든 참고 밤을 새어 보련만, 11시만 되면 눈이 감기는 것이, 이젠 도저히 안되겠습니다. 사회 초년생들이 집에만 오면 잔다는 그 속설을 저는 성실히 이행하고 있던 것이지요. 한 일주일이 지나자, 이제 11시 취침 굴레는 벗어났습니다. 이제는 한 새벽 2,3시까지 버틸 수 있습니다. 백수생활 일주일 째 될 때는 한국 드라마는 거의 다 봐서, 일본 드라마로 넘어갈 때쯤 입니다. 그렇게 새벽 3시까지 겨우 버텨서 잠들면 뭐합니까. 아니, 왜 또 아침 7시만 되면 눈이 떠지는지.. 그렇게 늦잠이 자고 싶고 자고 싶어도, 계속 습관적으로 눈을 떠 시계를 봅니다. 아, 이거 정말 미칠 노릇입니다.

두 번째, 퇴사를 하면 하기로 했던 모든 계획은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자, 이제 백수생활 2주차에 접어들게 되면, 이제 여러분들이 원하고 원하던 진정한 백수생활이 시작되게 되죠. 정말 주야가 바뀌어서 가족의 얼굴은 잊혀져 가고, 물론 가족들에게도 여러분의 존재는 잊혀져 가고 말이죠. 하지만, 이제 조금씩 지겨워지기 시작합니다. 분명 "그만둔다 그만둔다" 말하기로 결심했을 때는 퇴근 후 집에 돌아갈 때마다 정말 알찬 계획을 세웁니다. "자격증 5개 이상 따기", "스페인어까지 전부 마스터할 테다!", "매일 새벽에 운동가야지.", "장롱면허에서 벗어나보자!", "하루에 책 한 권씩 읽기" 별별 계획 다 세우죠. 하지만, 정작 꿈같았던 퇴사를 하게 되면, 정말 약속이나 한 듯 그 모든 계획들은 물거품이 되어 버립니다. 정말 물거품처럼 말이죠.

세 번째, 백수는 결코 한가하지 않다.

아, 정말 꿈같았던 백수생활에 접어들었습니다. 아직 이 백수라는 타이틀이 부끄럽지 않은 시기입니다. 물론 온갖 계획들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저는 시간은 많다고 여기게 되죠. 이것이 바로 백수들과, 백수가 아닌 모든 분들의 착각입니다. 백수가 되면, 회사를 다닐 때 보다 훨씬 바빠집니다. 이상하게도 친구랑 만날 시간이 더 줄어들기 시작하고, 자기시간 갖기도 하늘의 별 따기 입니다. 퇴사만 하면 cufs 수업을 매일매일 들어가며 예습에 복습에, 과제도 절대 밀리지 않을 것 같지만, 사이트 들어갈 시간조차도 없습니다. 참 희한한 일이지요. 뭐, 애인과 마주치는 시간도 점점 적어지니, 참.. 하긴, 귀차니즘을 또 무시할 수는 없지요.

이렇게 백수라는 타이틀이 부끄럽지 않은 "백수 한 달차"가 되면, 나름 베테랑으로 입문하게 되는 발판을 마련하게 됩니다. 집 안의 눈총을 피하는 방법도 터득하게 되고, 하루에 한 끼만 먹어도 버틸 수 있는 요령도 생기게 되고. 청년실업 어쩌고 하면서, 모두가 취업문에서 허덕일 때, 이상하게도, 그 것은 나와는 요원한 이야기인 것 같고. 정말 21세기형 백수의 첫 단계를 걷고 있는 것입니다.

회사를 그만두기 전 가장 고민을 했던 부분은, 다른 것도 아닌 세상으로부터의 시선이었습니다. 요즘 청년들은 실업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어." 란 풍조가 만연하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프리타가 생겨나는 것도 다 그런 것이겠지요. 저 또한 그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일찍이 서방문화에 길들어진 저로써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상으로부터의 시선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도 누가 물어볼 때, 직장을 다니는 것과 안 다니는 것은 엄연히 다른데.." 그 것이었습니다. 바로 결혼하기 힘들까 봐, 그것이었습니다. 내가 아무리 먹고 사는데 지장 없다 하더라도, 그래도 "직장인"과 "무직"은 엄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저는 확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과감히 ‘백수’라는 또 하나의 직업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어쩜, 이 선택이 저 자신의 도태를 넘어서서, 사회적 문제와, 국가적 손실까지 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또 어떤 면에서는, 저보다 더 나은 인재를 위해, 제가 한걸음 양보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그들의 시선이 두려워 계속 원치 않은 일을 해야만 한다면, 또 원치 않는 자리에서 불편한 생활을 해야만 한다면, 정말 그것을 원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폐가 되고, 또 그 뛰어난 인재들이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고된 일에 좀처럼 손을 대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들 걱정합니다.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고, 그들의 미래를 걱정합니다. 다른 이들이 보기엔, 그들이 정말 하고 싶은 일만 하려 하기 때문에, 걱정이 될 수도 있겠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그들이 하고 싶은 일에서 최선을 다하여, 더욱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게 되고, 더 나아가 나라의 앞날에 크나큰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저는 백수입니다. 장사가 너무 해보고 싶어서, 회사를 말 그대로 뛰쳐나왔습니다. 오랜 유학생활로 지쳐있던 제가, 한국에 와서 직장을 다니게 되고, 또 사람을 만나게 되고, 한국 사회에 서서히 젖어 들게 되면서, 뭔가 허무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장에서도, cufs에서도, 그들과 나는 분명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제가 가장 힘들어하던 언어구사능력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열정’의 차이였습니다.

저는 장사를 시작하였습니다. 퇴사 후 하고자 했던 그 수많은 것들 중 드디어 한 가지를 이행시킨 것이지요. 저는 제가 살아 온 25년 중에, 이렇게 열정적으로 임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실컷 돈 들여서 유학까지 시켜놨더니…. 라는 시선도 있습니다. 고작 100원짜리 팔아서 뭐하냐, 라는 분들도 있습니다. 물론, 한 달에 12시간 투자하여 50만원 벌었던 과외알바와는 확연히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루 종일 붙어 있어도, 2시간 동안 하나도 못 팔아도, 하루에 2시간 밖에 자지 못해도, 그래도 너무도 즐거운 것은,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해서입니다.

하하, 물론 이것은 백수생활을 미화시키기 위한 합리화일 뿐입니다.

아이들은 100원짜리 사탕 하나를 사먹기 위해서 50원짜리에 10원짜리 5개를 꾸역꾸역 모아서 옵니다. 어떤 아이들은 오락 한판 해 보겠다고 10원짜리를 한 움큼 쥐고 와 바꿔달라고 합니다. 500원짜리 유희왕 카드를 사지 못해, 다른 아이들이 버리고 간 유희왕 카드를 모아 가는 아이도 있습니다. 학교 가면 돈 뺏긴다고 아침에 와서 돈을 맡기고 방과 후 와서 먹을 것을 사먹는 아이도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항상 도둑이라고 의심받던 아이가, 제 말 한마디로 인해 힘을 얻고 가는 일도 있습니다.

비록 집에서는 허황에 들떠 있는 한낱 백수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은, 저 같은 백수도 필요로 합니다. 100원짜리 과자가 있는지도 몰랐던 저에게 이 백수라는 직업은 정말 많은 것을 알려주고 또 가르치려 합니다. 100원을 벌려고 아등바등 하는 저도, 100원이 아쉬워서 내가 파는 물건조차도 함부로 먹지 못하는 저도, 모두 백수가 가르쳐 준 결과입니다. 저는 이 백수라는 직업에, 정말 커다란 열정이 생겼습니다.

얼마 전 중국 TV에서 보았던 한 장면이 떠오르네요. 명문 ‘청화대학’ 졸업생이 자신의 고향에서 두부 장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의아해했죠. 그러나 본인은, "즐겁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저도 남들과 같은 열정을 같게 되어서 너무도 기쁩니다.
저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어, 너무도 즐겁습니다.

무엇보다도, ‘백수’라서 너무도 신이 납니다.

백수, 이 직업, 정말 할 만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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