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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비밀상자 3
2007년 12월 01일 (토) 서은희 기자 silvereh@hanmail.net

“아빠, 나의 하늘 3”

오늘은 가족들끼리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왠지 느낌에 나의 유학을 허락해주려는 것 같다.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하는 백혈병 아동 놀이봉사를 마치고,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는데 연락도 없이 가족들이 먼저 외출했다는 사실에 심통을 내며 아빠 휴대폰으로 전화를 건다. 역시 한 번에 못 받는 아빠. 맨날 나이는 못 속인다고 그렇게 벨 소리가 안 들리냐며 아빠와 장난하곤 하던 다시금 통화버튼을 누른다. 내가 직접 선정한 아빠의 컬러링을 들으며 기다리고 있노라니 아빠가 아닌 엄마가 전화를 받는다. 다급한 엄마의 목소리. 아빠가 응급실에 계시다고...

병원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난 울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을 거라는 걸 믿고 싶어서 이를 악물고 참았다. 병원에 도착했다. 언제나 크고 건강해 보이던 아빠가 침대에 힘없이 누워있다. 의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TV에서만 보던 산소호흡기와 이것저것 큰 기계들이 아빠의 주변에서 아빠의 상태를 말해주고 있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참아야 한다. 아빠가 내가 울면 싫어할 거니까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 참을 수... 없다..

뇌졸중이라고 의사가 무표정한 표정으로 말한다. 혹시 가족들이 못 알아 들었을까봐 다시 한 번 흔히 불리는 중풍이라고 못을 박는다. 병원에 일찍 온 덕택에 가능한 조치는 모두 했지만, 혈관을 뚫는데 실패했단다. 연세가 많고 고혈압 등 지병이 있어 보통 환자들보다 심하게 마비가 올 거란다. 왼쪽은 팔, 다리는 물론이고 얼굴까지 마비가 올 테니 가족들도 마음 단단히 먹고 재활에 힘써야 한단다. 그러나 약간 미안한 표정으로 다시 걷기는 기대하지 말라고 재차 확인시켜준다.

어린 시절, 아픈 사람을 고쳐주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나 한번쯤 해보았으리라 생각한다. 나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의사는 참 고된 직업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울며불며 매달리는 환자 가족들에게 이렇게 감정 없이 얘기하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 아닐까.

의사는 역시 의사다. 정확했다. 이제 아빠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늘 나의 기둥이었던 아빠가.. 왼쪽 팔, 다리를 움직이지 못함은 물론이요, 부딪혀 심하게 멍이 들어도 전혀 알지 못한다. 결벽증이 있다고 엄마가 할 정도로 깨끗하던 아빠가 왼쪽 입으로는 음식이 흘러내려도 모르고 식사를 계속한다. 80Kg이 훌쩍 넘었던 아빠는 입원 두 달 만에 10Kg도 넘게 빠졌다. 막내딸이 어리니 젊어보여야 한다며 꾸준히 하던 염색도 하지 못해서 까만 머리는 이제 온데간데없고, 희끗희끗한 흰 머리카락만 남아있을 뿐이다.

아빠의 뇌졸중 발병 이후,
처음 한주는 울기만 했다.
둘째 주는 세상을 원망했다.
셋째 주는 생각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넷째 주에는 결심했다. 아빠를 위해 살아야 겠다.

서점에 갔다. 뇌졸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책들을 다 들고 오기 벅찰 정도로 샀다. 며칠이고 책에 파고들었다. 책은 내게 많은 걸 가르쳐주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조언은.. 가족들이 힘을 내서 환자를 도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울고불고 할 시간에 환자와 운동을 하라고 한다.

사람들은 나보고 다 여리다고 말하곤 했었다. 상처 잘 받고, 잘 울고, 천상여자라고 했다. 그래서 나 스스로도 강해질 기회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 강해져야 했다. 아빠의 체중을 감당할 수 있도록 매일 마다 새벽에 운동을 했다. 그리고 퇴근 후엔 어김없이 병원에 가서 아빠의 재활훈련을 도왔다. 아빠도 처음 한 달은 충격에 말도 안하고 왜 몸이 안 움직여 지냐고 하면서 집에 가고 싶다고 하곤 했다. 그때마다 운동해서 걸어서 집에 가자고 말하며 눈물을 참으려고 얼마나 이를 악물었는지 모른다. 두 달째부터는 아빠도 마음을 다잡고 운동을 열심히 했다. 그렇게 하기를 여섯 달.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상태는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 재활훈련은 여전히 힘들어 보였으며 모두들 점점 지쳐갔다.

그리고 그 즈음, 아빠는 재활훈련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해봐야 소용이 없다며 거부하는 아빠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내가 있을 땐 그나마 웃기도 하고, 운동도 하고, 식사도 하고 했지만, 다른 때는 모든 것을 거부했다. 의사는 극심한 우울 증세에 자살충동이 오는 것이라고 했다. 자살충동이란 말을 듣고 세상이 꺼지는 것 같았다. 그나마 막내딸이 곁에 있으면 좀 나으니 곁에서 오래 지켜드리는 방법 뿐 이란다. 우울증으로 재활은 불가능해서 한동안은 우울증치료에만 전념을 다했다. 그러다보니 아빠의 몸이 점점 굳어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하지만, 조금씩 웃음을 찾는 아빠를 보면서 몸이 아픈 것보다 마음이 아픈 게 더 힘든 것이라는 것을 알았고 온가족이 아빠의 마음의 치료에 힘썼다.

그렇게 힘들었던 우울증치료도 마치고, 재활훈련을 다시 들어가며 가족들은 차차 안정을 찾아갔다. 그러기를 1년 7개월. 아빠는 주말에는 집에 와서 가족들과 다 같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식사량이 부쩍 줄어들었던 아빠가 오랜만에 저녁식사를 즐겁게 마쳤고, 다같이 TV도 봤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휴대폰에 아빠 목소리를 녹음하기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오랜만에 기분 좋게 인사를 나누고 침실로 간 아빠는 무척 편안한 표정으로 아무도 모르게 우리 곁을 떠났다. 가끔 생각한다. 그날이 아빠와의 마지막 시간이 될 줄을 미리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막내딸이 너무너무 사랑한다고, 다시 태어나도 내 아빠로 태어나달라고 얘기 할 텐데.

하늘에 계신 아빠께 드리는 막내딸의 편지..

아빠~
오늘은 아빠 집에서 사진을 찍었어~
언제나 아빠 집에 가면 눈물이 나.
떨어져 사는 것도 억울한데~
언제나 크게 보이던 아빠가
그 작은 속에 들어가 있는 게 너무도 서러워서
그래서 맨날 맨날 눈물이 났어.
근데 엄마랑 언니들이랑 슬퍼할까봐
맨날 맨날 참았던 거 알아?
아빠 안보고 싶어서 안 운거 아니니까
이해해줘.

친구들은 나한테 그래
시간이 약이라고.
그렇게 좋은 아빠랑 27년을 산 내가 부럽다고.

근데 내가 지금 아빠 미워 하는거 알아?

그렇게 갑자기 갈 거면 잠깐 말이라도 하고 가지.
내 얼굴 한번이라도 더 보고가지.
말도 안하고.. 쓸쓸하게 그렇게 혼자 가면
남겨진 가족들은 어떡하라고.

나랑 30년도 못 살거면 나를 첫째 딸로 낳아주지.
왜 나를 막내딸로 낳아서
내가 아빠랑 한 시간이 가장 짧잖아.
미워 죽겠어.

그렇게 말도 안하고 갈 거면 잘해주지나 말지.
너무너무 잘해줬던 기억만 남겨놓고
난 아빠한테 잘못했던 기억만 남겨놓고
효도할 시간도 안주고.

아빠가 떠나고 나서 첨엔 너무 아파서
죽을 것만 같았는데.
이젠 자주 웃기도 하고 그래.
이제 웃고 살려고
나 그래도 되지?
아빠 잊어서 웃고 산다는 거 아니야
내 맘 속에 언제나 아빠는
막내딸을 가장 사랑해주었던
고맙고도 고마운 아빠로
내가 영원히 기억하니까.
그러니까 나도 웃고 살께
이별이 영원한 이별이 아니고
기억이 추억이 되어 우리 모두의 맘속에 아빤 영원하니까.

근데 말이지
그래도 아빠가 잘못한건 알지?
그렇게 말도 안하고 떠난 거랑, 이것저것 모두다.

그러니까 이거 하나만 부탁할께.

다음 생애에도

나를 딸로 받아줘.

내 아빠가 되어줘.
그땐 지금 못했던 효도
다할께.

보고싶어.
정말 너무 보고싶어.

미안해 아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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