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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학생이 되어
일본어학부 권경애교수 (기초일본어회화/ 시추에이션일본어회화 담당)
2007년 12월 01일 (토) 일본어학부 권경애 교수 kkwon@hufs.ac.kr

미국 땅을 밟은지 만으로 넉 달이 되어갑니다. 그동안 느꼈던 점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불편함'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영어로 의사소통이 안 되니까 속이 답답해 불편합니다. 그네들의 생활 관습을 모르니 실수투성이라 마음이 불편합니다. 마치 남의 옷을 빌려 입은 듯한 이 느낌을 언제쯤 지울 수 있을까요? 그런데 왜 미국에 왔냐고요? 그건 두 가지 목적에서였습니다. 하나는 '일본어학습에서 나타나는 모국어의 간섭현상'이라는 연구를 위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전자에 대해서는 사이버외국어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면서 새롭게 찾게 된 연구테마인데 제 전공영역인 음성 음운과 교육학의 접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후자에 대해서는 사이버외국어대학교 학생들도 공감이 가지 않나 싶어요. 안 가본 길에 대한 궁금증이랄까? 미국이라는 나라를 한번쯤 느끼고 싶었거든요. 일본어는 흥미를 가지고 공부하다 보니 어느새 일본어 전문가 축에 들어버렸고 일본인을 만나면 물 만난 고기처럼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지만 내 머리 속에 있는 영어는 20년 전에 배웠던 고등학교 교과서 수준이거든요. 서양인을 만나면 왠지 모르는 두려움으로 자리를 슬쩍 피하곤 했지요. 아무리 머리 속에서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라는 인사를 곱씹어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내 자신이 너무나 한심해서 쓴 웃음을 지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답니다. 그래서 결정했지요. 외국어로서 일본어를 배우는 나라, 그래도 다른 언어보다는 친숙한 영어권에서 1년을 투자하자. 저는 2007년 7월 물속에 뛰어드는 심정으로 미국이라는 나라에 도착했습니다. 물속에 들어가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잖아요. 오로지 자신의 실력과 감각만으로 물살을 헤쳐 나가야만 목표점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지요. 저는 지금 늦깎이 학생처럼 지내고 있어요. 청바지에 티셔츠를 한 장 걸치고 캠퍼스를 활보하며 다니다 보면 내가 20대로 되돌아 간 것 같아 하루하루가 새롭게 느껴지더군요. 사이버외국어대학교에서 제 수업을 듣는 학생들 중에 4,50대 주부님들이 쪽지를 보내오실 때가 종종 있는데 아마 그 분들이 느끼는 감정이 이러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기도 한답니다.

첫 달은 얼마나 실수를 많이 했는지 "원래 배우면서 경험하는 것이다." "이게 산 공부다." 하며 스스로를 달래곤 하였지요. 그 말을 듣고 우리 아이가 하는 말이 "우리는 경험만 실컷 하다 돌아가겠네."랍니다. 진짜로 그렇게 될 지도 모르겠어요. 영어도 생각만큼 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넉 달 동안 보고 느낀 것을 생각하면 잃는 것 보다 얻는 게 더 많은 것 같아요. 온지 몇 달 되지 않았지만 어설프게나마 지금까지 일본어 관련 수업을 청강하면서 느낀 점을 몇 가지 들려드릴까 해요. 우선 학교 소개를 좀 할게요. 제가 소속한 University of North Carolina는 200년가량의 역사를 지닌 학교로서 요즈음은 낡은 건물들을 리모델링 하느라 공사가 끊이질 않아요. 며칠 전에는 공사장 벽돌에 채여 그만 꽈당 하고 넘어진 적이 있는데 창피해서 얼른 일어나 누가 보지 않았나 살펴보다가 너무 우스워서 연구실에 들어갈 때까지 피식 피식 거렸어요. 버스정류장에서 약 2-3분 걸어가면 Asian Studies Department가 있는 New West 라는 하얀 건물이 있는데 여기도 중국어 열풍은 대단하더군요. 그리고 아랍어를 학습하려는 학생들도 상당히 많네요. 일본어도 학생들이 선호하는 언어 중의 하나입니다. 작년부터 한국어 전공이 생겨 한 학년에 3, 40명가량이 수강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루 빨리 한국어 전공코스가 더 커졌으면 좋겠더군요. 월요일과 수요일은 언어학과에서 '일본어의 구조'라는 수업을 개설하여 일본어 전공자들에게 제공하고 있어서 그 수업을 청강하고 있어요. 강의하시는 교수님이 MIT 대학 박사과정 시절에 일본 큐슈에서 2년 정도 연구한 적이 있어서 일본어를 곧잘 하시는데 처음 만났을 때 인사 빼고는 일본어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행운이었답니다. 그렇지만 수업은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하루 종일 예습해도 따라가기가 벅차네요. 중간 중간에 예로 드는 일본어 용어나 문장들을 통해 대략 어떤 내용을 이야기 하고 있는지 추측하며 머리 속에서 꿰어 맞추며 듣고 있답니다. 영어원서라고는 대학원 시절 스터디 그룹에서 본 책 한 권이 전부인데, 혼자서 보려니 교재 한 페이지 넘어갈 때마다 단어 정리 노트가 한 페이지씩은 되네요. 이것도 자주 찾다 보니 이제는 용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외우는 게 옛날보다 많이 느려진 것을 실감하고 있어요. 사이버외대에는 늦게 공부를 시작한 학생들이 많은데 그분들의 어려움을 알 것 같아요. 그런데 '일본어의 구조'에서 사용하고 있는 전공서적에 일본어를 표기하는 글자, 히라가나와 가타카나, 한자가 보이지 않아서 놀랐습니다. 모든 용례는 로마자로 표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이것이 너무 생소하게 느껴져서 뭐 이런 나라가 다 있나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글자 습득에 시간을 들이기보다 내용을 이해하고 논문을 작성하는 데는 이 방법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생각에 채택한 것 같아 미국사람들이 정말 실용주의적 사고를 가졌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저처럼 음운사나 일본어사를 연구하는 학자보다는 현대어를 전공하는 학자들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니 가능한 일이기도 하겠지요. 일본어 입문수업도 들어가 보았어요. 미국인 학생들이 일본어를 어떻게 배우는지 상당히 궁금했기 때문에 진작부터 들어가 보려 했는데 지난주에야 시간을 낼 수 있었어요. 교과서는 겡키(?)라는 나고야 대학에서 발간한 영어권 일본어 교재로 하루 1시간씩 주 5일을 학습하더군요. 월수금은 보통 진도를 나가는 수업이고 화목은 수업내용을 연습하는 시간이어서 배운 단어와 문형을 끊임없이 반복 연습합니다. 이렇게 한 주에 한과 분량을 나가는데 집에 가서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될 만큼 선생님들이 차근차근 반복연습을 시킵니다. 열심히 하는 학생은 발음도 좋고 수업자세도 아주 진지하더군요.

여기 대학생들의 수업태도는 상당히 활동적이어서 수업 중에 시도 때도 없이 손을 듭니다. 질문이 있다는 표시인데, 절대로 "질문 있어요." 라고 말하지 않고 교수가 발언권을 줄 때까지 계속 손을 들고 있는 게 특이했습니다. 질문할 때는 아무리 초보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너무나 당당하게 질문하고 담당교수 또한 반복되는 질문에도 하나하나 진지하게 답변하는 모습이 보기가 좋았어요. 우리 사이버외대 수업 학습게시판도 좀 더 활발하게 글이 올라오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수업을 들으면서 얻은 소중한 경험은 무엇보다도 우선 새로운 관점에서 일본어를 바라보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한자에 대한 지식도 전혀 없고 어순도 전혀 다른 언어를 학습하는데서 느끼는 이곳 학생들의 애로점을 통해 교육방식의 차이점도 알게 되니까 재미있기도 하고요. 언어학 시간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들었어요. 미국인이 일본어를 말할 때 범하는 오류 중의 하나가 악센트랍니다. 영어는 강세(스트레스) 악센트 언어이어서 일본어와 같은 고저(피치) 악센트를 발음하는 게 참 어렵다고 합니다. 강세가 있는 모음의 경우 영어에서는 장모음이 되는데 이러한 영향으로 일본어의 고음 부분을 길게 발음하여 이상한 일본어가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와따시(저)' '오하요(안녕하세요)'를 '와따아시" '오하아요' 로 발음하는 식이죠. 비단 악센트뿐이겠어요? 미국인이 한국어 발음할 때도 영어특유의 억양을 느낄 수 있는 데 일본어를 말할 때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외국인인 제가 영어를 발음할 때도 미국인들은 어색한 억양과 발음에 신기해하고 거북함을 느끼고 있겠지요. 사실, 한국인이 하는 영어발음이 제일 잘 알아듣기 쉬운 것은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제 수업에서 일본어 음성과제를 제출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발음과 억양에 주의하세요."라는 피드백 메시지를 받아봤을 텐데 정말이지 외국어는 처음 배울 때 제대로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새삼 느끼고 있어요. 한번은 수업에 들어갔다가 '-데스(-입니다)'와 '-데스요(-이랍니다)'의 차이점에 대한 질문을 받고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긴장하여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던 게 못내 아쉬웠는데 다음에 그 학생을 만나면 우리 학생들에게 설명하듯이 알기 쉽게 제대로 설명해 주고 싶은 마음 간절하네요. 또한 그들이 왜 일본어를 공부하게 되었는지, 일본에 대해서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게 된다면 미국인들의 일본관, 동양관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끝으로 제가 한 실수 하나를 더 고백하고 마칠까 합니다. 알고 있는 표현도 때와 장소에 따라 잘 못 쓸 수 있다는 것인데요, 수업이 끝나고 나서 옆자리에 앉은 대학원생에게 "Have a nice weekend!" 라고 말했더니 깜짝 놀라며 잠시 후에 "You, too."라고 답변하더군요. 돌아오는 길에 그가 왜 놀랐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수요일이라는 시기가 잘못되었던 것이더군요. 저는 주말 잘 보내고 다음 주 월요일에 보자는 의미로 썼는데 미국에서는 금요일에나 이런 표현을 쓰는 게 일반적이었던 것이죠. 이런 초보적인 것도 몰라서 실수하는 일을 우리 사이버외대 영어학부 학생들이라면 하지 않았겠지요? 영어회화가 좀 더 자연스러워져서 일본어 전공 학생들과 더 많은 대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1년 후에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있도록 경험만(?) 많이 쌓아 돌아갈게요. 여러분들도 귀찮다고 대충 건너뛰지 말고 열심히 반복연습을 해서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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