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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그리고 또 도전
2008년 02월 01일 (금) 박복진 편집장 faab52@hanmail.net


정확하게 38년 전 겨울, 저는 동대문구 이문동에 있다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정문 앞에 서있었습니다. 시골에서 12시간의 완행 기차를 타고 올라와 내가 가고 싶었던 대학교의 정문 앞에 겨울옷도 변변한 게 없어 홑겹 교련복만을 입고 추위에 아래턱이 달달 떨렸던 그 날, 나는 학교의 건물만 보고 뒤로 돌아섰습니다. 지독한 가난으로 입학 지원서를 살 돈 단 몇 푼이 없었기에 짧은 겨울 해가 만드는 초라하니 긴 그림자를 뒤로 하고 아무에게도 해 댈 수 없는 울분으로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올라오던 뜨거운 피를 억누르며 뒤로 돌아섰습니다. 언어를, 영어를 배워보겠다는 꿈이 현실적으로 무참히 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돌아서던 그 날 그 순간을 바로 내 꿈을 향한 첫걸음으로 삼았습니다. 영어를 잘 해 보겠다는 내 심지에 절대로 꺼지지 않을 불을 당기는 날로 만들었습니다. 당장 그 이튿날부터 생업에 뛰어들어 염색공장의 2교대 철야근무에도, 달에 한 번만 쉬는 요꼬 공장의 주 7일 근무에도, 어떤 때는 장마 폭우로 도로가 파인 서울 시내 변두리 도로 일용직으로 나가는 트럭의 적재함 위에서 시커먼 타르를 퍼 담는 삽질을 할 때에도 내 주머니에는 단어장, 가슴 품속에는 숙어장이 떨어지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노가다 휴식시간에는 모퉁이 그늘을 찾아 가슴을 열고 주머니를 뒤졌습니다. 군대 3년, 포 벙커에서도 날밤을 꼬박 세우는 상황실에서도 나는 다 헤진 단어장과 숙어장을 놓지 않았습니다. 무전기 안테나 끝을 타고 들려오는 미군방송에 매달려 발음을 익혔습니다. 그러자 눈이 떠지고 입이 트이고 귀가 열렸습니다. 나는 이렇게 영어를 붙잡고 내 전 인생을 걸었습니다.

군 제대 후 무역회사 말단으로 들어가게 되자 내 인생은 바야흐로 날개를 달게 되었습니다. 세계의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며 무역을 했습니다. 세계를 상대로 신발을 팔았습니다. 주인이 네 번이나 바뀌어 겉표지가 다 헤진 영어 콘사이스 사전을 외우며 한장 한장 낱장을 찢어 질근질근 씹어 삼켰던 그 단어를 토해서 나는 구문을 말하고 문장을 만들어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보냈던 세계를 무대로 한 나의 지난 34년, 남 보기에는 우스울지 모르나 저 자신 정말 보람찬 일이었습니다. 영어를 말 할 수 있는 덕분에 가질 수 있었던 세계 각처의 아름다운 추억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표 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수많은 외국인들과의 보석과도 같았던 우정. 그러기에 보장되었던 내 가족을 먹여 살리는 일. 나는 점차 내 삶의 안정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하고자 했던 일 중 하지 못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내가 가고자 했던 동대문구 이문동의 외국어대학교, 나는 그 정문을 들어가야 했습니다. 2004년 제1기 사이버외국어대학교 학생모집 광고를 보는 순간 주저 없이 원서를 냈습니다. 학교 국제관에서 입학식이 있던 그 날, 정문을 들어서며 나는 아내에게 눈물을 보였습니다. 34년을 돌고 돌아 이 정문에 다시 서는 순간, 나는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생업과 학업의 두 계란을 들고 제 2의 도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미 수년전에 다 달아나버린 기억력 복구에 처절하게 매달렸습니다. 금방 봤던 단어와 조금 전에 외웠던 구문은 생면부지, 그랜드 캐넌 골짜기에 떨어진 동전처럼 주워 담기가 어려웠습니다. 잠을 줄였습니다. 학업과 생업, 이 두 가지 말고는 내 안중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은 4년 후로 몽땅 미루어졌습니다. 동네 도서관 모퉁이 책상 하나를 내 전유물로 만들었습니다. 공부에 방해되는 사람에게는 가차 없이 주먹질을 해대어 긴급출동 112 경찰차 신세도 졌습니다.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고학년으로 올라가니 강의내용이 어려워지고 과제가 복잡해졌습니다. 덩달아 하던 사업도 더 바빠져 시간에 항상 쫓겨 다녔습니다. 컴퓨터를 다룰 줄 몰라 시험시작 직전 고장 난 내 집 컴퓨터를 놔두고 야밤에 사무실로 차를 몰아 사무실 책상의 컴퓨터에 다시 앉으니 땀이 컴퓨터 자판기에 떨어져 고개를 옆으로 돌리어 가재 눈으로 모니터를 보며 시험에 응시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휴학의 유혹이 혀를 널름거리며 나를 괴롭혔습니다.

나를 다그칠 필요가 있었습니다. 내 몸 속 세포에서 도전의 불씨를 다시 지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하고 있었던 마라톤의 영역을 더 넓혀보기로 했습니다. 42.195km에서 당시에는 불가능으로 여겼던 100km 울트라 마라톤을 시작했습니다. 어려우면, 시련이 다가오면, 그 보다 더 큰 시련을 만들어 극복하면 됩니다. 매 해 고비가 올 때 마다 겁 없이 100km씩을 더 늘려 나갔습니다.

그래서 무박․무지원 서바이벌로 제주도 일주 200km를 뛰었고 서해에서 동해까지 한반도 횡단 308km를 뛰었고 작년에는 한반도를 대각선으로 긋는 남한에서 제일 긴 거리인 전남 해남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622km를 무박․무지원 145시간 02분으로 도전자 146명에서 중도 포기자 64명의 무덤을 넘어 완주자 83명 중 31위에 내 이름 석 자를 올렸습니다. 나의 자랑스러운 내 모교, 사이버외국어대학교 이름이 박힌 수건 한 장 들고 밤과 낮을 쉬지 않고 뛰어 완주선의 오색 테이프를 내 가슴에 걸치고, 완주선에서 기다리던 아내가주는 들꽃 한 묶음 향기에 감격의 눈물을 쏟았습니다.

2학년 때는 1,000여명 학부생의 대표로 학교를 위해 시간을 쪼갰습니다. 학교의 월간 학보 미네르바가 창간되자 초대 편집장으로 선임, 졸업을 앞둔 지금까지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학교 행사에는 그 누구 못지않은 열성으로 참여 공로상을 거푸 거머쥐며 그 누구보다도 학교일에 앞장섰으며 제 자신 최선을 다해 후회 없는 학점 평점 4.09로 조기 졸업 대상자 속에 있었으나 사이버외국어대학교 제1기 입학, 정시졸업으로 제 명예를 세우고자 그리고 남은 학기동안 학교일에 더 봉사하고자 조기졸업을 마다하고 정시졸업을 선택, 이제 영예로운 2월 정시 졸업식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졸업식 날 저는 집에서 학교까지 마라톤으로 뛰어갈 것입니다. 뛰면서 생각 할 것입니다.
4년 동안 생업과 학업에 줄기차게 저를 몰아 부친 열매는 결코 작지 않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잠깐의 숨고르기 후 다시 또 다른 도전을 위해 내 뜀은 계속될 것이라고 다짐 할 것입니다. 지난 4년, 내 모교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내 도전의 연속성, 나는 학교의 이 은혜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38년 전 목표로 했던 나의 모교는 참말로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나는 뛰면서 나 혼자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허락해 준다면 나는 나의 후배들께 한 마디 하고 싶습니다. 도전 그리고 또 도전, 이것은 어느 특정인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고, 그리고 아무리 그 결과가 보잘 것 없이 작아도 그 과정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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