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다닐 적, 방학 때마다 꼭 해야 하는 숙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만들기. 잘 만들든 못 만들든 반드시 만들어야 했다. 주제가 있던 적도 있었지만 없던 적이 더 많았다. 그럴 때면 서슴지 않고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 ‘집’. 고민할 필요조차 없었다. 유난히 집에 집착한다. 이번 ‘한 스타일(Han Style)’ 박람회도 ‘한옥’이란 주제가 관심을 끌었다. ‘집’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집은 꾸미기 나름이다. 주인의 기호가 그대로 드러난다는 점이 있다. 그래서 집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 어떤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한 점에서 한옥은 남다른 특징을 갖는다. 특별한 장식을 하지 않아도 집 자체에서 멋이 난다. 자연에서 가져온 재료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느낌이다. 산속에 아파트가 지어져 있다면 어색하겠지만, 기와집이나 초가집이 있다면 모나지 않게 어울리는 것이 그 남다른 매력이다. 그래서 항상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무엇일까. 무엇이 이들을 자연과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일까. 그 속사정을 낱낱이 알고 싶었다. 그래서 찾아가 보았다.

박람회장의 중앙은 혜원 신윤복의 ‘밀회’를 연상케 하는 기와를 얹은 돌담이 서로 마주하고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사실 그 담장은 사진에 불과했지만 방문하는 이로 하여금 옛 정취를 느끼게 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조금 더 들어가니 부스마다 다른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 중 유독 눈에 들어온 것은 돌로 만든 초가집과 그 주변에 작은 도랑이 흐르는 조각품이었다. 돌이었지만 석공의 풋풋한 정을 물씬 느낄 수 있었다.

조금 더 들어가니 한옥 방식으로 지은 집이 하나 나왔다. 나무들이 이리저리 서류 균형을 이뤄 짜맞추어져 있었다. 기단의 모습도 간소하게 보였으며 한지를 바른 문은 쇠장석¹⁾이 그 멋을 더해 한층 우아하게 느껴졌다. 차를 만드는 준비가 한창인 중년의 신사분도 자리 한쪽을 빛내고 계셨다. 집 바깥쪽에는 우리네 정서를 그대로 보여주는 항아리들이 반질반질 빛에 비쳐 더 정감있게 보였다. 마치 땡볕 아래 놓인 장독들 같았다. 예로부터 대쪽 같은 선비를 나타내던 대나무들도 나가는 이의 발걸음을 즐겁게 해 주었다.

남자들이라면 한 번쯤 건담이나 태권브이같은 모형을 가져보고 싶은 것이 꿈인 적이 있지 않았을까. 이런 모형에 버금갈 만한 것이 바로 실제 건축물과 똑 닮은 작은 모형들이다. 실제 크기의 몇 십에서 몇 백 분의 일에 이르는 건축모형들은 한 번 들어가서 살아보고 싶다는 상상을 하게 된다. 모형 중에는 현재 불타 없어져 재건 중인 숭례문 모형도 있어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고 카메라의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전시 한 편에는 한옥을 만들려면 어떻게 구조를 잡아야 하는지 모형 등으로 설명해 놓은 곳도 있었다. 실제로 한옥을 지어놓고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던 부스도 있었는데 운 좋게도 마음씨 좋은 한 관람객과 인터뷰를 할 기회가 생겼다.

“이 건물은 저희 학생들이 만든 한옥이에요. 땅 끝에서 처마 아래로 올라가는 이 굵직한 것이 기둥²⁾이고 그 기둥과 기둥 사이에 얹은 것이 장여³⁾이며 그 위가 도리⁴⁾예요.”

한옥을 구성하는 부분 부분에 대해 차근차근히 설명해 주셨다. 생전 들어보지 못한 단어들이라 받아 적으면서도 연거푸 물어야 했다. 한국에 살면서도 한국의 전통적인 집구조는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새삼 부끄러웠다.

“사실 전 이 한옥을 지은 학교의 학생이에요. 올해 저도 제가 살게 될 한옥을 지으려 합니다.”
환하게 웃으며 말씀하시는 그 분은, 자신은 영암 한옥학교의 학생이라고 하셨다. 학교에서는 한옥을 만들고 공부하려는 학생들을 길러낸다며 꼭 한번 놀러 오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끝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건네고는 이내 그분과의 깜짝 인터뷰를 마쳐야 했다.

이 외에도 한옥을 만들 때 쓰이는 연장 종류를 전시해 놓은 곳과(사진7), 실제로 한옥을 만들 때 어떤 상 황인지 재현해 놓은 곳도 볼 수 있었다. 보는 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서적을 도매 값에 판매하는 곳도 있어 조금 더 폭넓은 지식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안성맞춤일 것이다. 영국에 1년 정도 지낸 기간이 있었다. 그 기간에 영국의 집구조와 모양이 흥미로워 그들의 집들에 대해 분석하고 하나의 글로 만들어 낸 경험이 있다. 하지만, 정작 내가 사는 나라의 전통가옥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필자도 한 권 샀다.

혹시 한옥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싶은 분이 있다면 이 방법을 따라 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먼저 가까운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에서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가능한 얇은 한옥 관련 서적을 산다. 책을 전체적으로 훑어보며 한옥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각각의 부분이 무엇을 뜻하고 어디쯤 있는지만 눈여겨보면 된다. 그런 연후에 적당한 날을 골라 근처의 고궁이나 한옥마을에 가서 책에서 봤던 각각의 모습을 실제 건물에서 찾아보면 분명 감회가 새로울 것이다. 이전에 줄곧 보아 왔던 그런 지루한 고궁이나 한옥마을이 아닐 것이다. 필자 또한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속속들이 보였다.

덕수궁에 가게 되면 외국 화가의 특별전이 열리는 미술관만 들리지 말고 그 옆에 한옥도 한 번 둘러보자. 사전지식과 함께하는 고궁과 한옥마을여행은 무척 대단한 일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께 드리는 깜짝 질문! 과연 한옥에는 굴뚝이 어디에 있으며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이제 곧 가을이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독서의 계절 가을. 무더위가 물러가고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가을날, 작은 책 하나 둘러메고 고궁을 찾아봄은 어떠할지 생각해 보는 여름의 끝 무렵인 어느 저녁 날이다.

참고문헌: 한옥의 재발견, 주식회사주택문화사, 이심, 2002. 4.
http://dic.naver.com
두산백과사전
 
1) 살림집을 치장하는 중요한 요소로서 돌쩌귀, 비녀장, 걸쇠(들쇠), 문고리, 바탕쇠와 못 등이 있다.
   (한옥의 재발견, 주식회사주택문화사, 이심, 2002.4.)
2) 건축공간을 형성하는 기본 뼈대 중의 하나로서 지붕 ·바닥 ·보 등 상부의 하중을 지탱하는 수직재(垂直材)로, 서양건축에서는 주초(柱礎:base) ·주신(柱身:shaft) ·주두(柱頭:capital)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나, 한국건축에서는 서양 기둥의 주신만 해당된다 (두산백과사전)
3) 도리 밑에서 도리를 받치고 있는 길고 모진 나무(국립국어원)
4) 기둥 위에서 보아 십자형으로 교차되는 나무 중에서 서까래를 받는 부재
   (한옥의 재발견, 주식회사주택문화사, 이심, 20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