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린 ‘르누아르 회고전’ 이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최대 규모로 열린 ‘행복을 그린 화가 르누아르(Renoir) 회고전’이 오는 9월 13일 날 성황리에 막을 내린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시골무도회>, <그네>를 비롯해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미술관 등 전 세계 40여 곳의 미술관, 개인이 소장한 르누아르의 작품 118점을 한 자리에 모아 선보였던 이번 전시는 수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명작에 대한 대중들의 높은 관심을 증명해주었다.

이번 전시회는 총 8개의 주제 (일상의 행복, 가족의 초상, 여성의 이미지, 욕녀(浴女)와 누드, 르누아르와 그의 화상들, 풍경화와 정물화, 알베르 아드레가 본 르누아르, 르누아르의 종이작품)로 구성되었으며 각 주제는 구역별로 나누어져 있고 그에 따른 자세한 설명이 적혀 있어 관람객들이 쉽게 작품에 다가가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행복을 그린 화가(Promise of Happiness)
1841년 2월 25일, 프랑스 리모주에서 재단사의 칠 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난 르누아르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소년이었다. 이사 후 1854년 파리 사기그릇 공장의 도자기 화공으로 수습생 생활을 시작하며 화가가 되기로 한 그는 21세가 되던 1862년 파리 국립미술학교에 입학하여 모네, 시슬레 등을 알게 되고 또한 피사로, 세잔, 기요맹과 오가며 훗날 인상파운동을 지향한 젊은 혁신 화가들과 교류하게 된다. 1864년 살롱에 첫 작품 <에스메랄다>를 출품하여 성공을 거두지만 그 이후로 19세기 산업혁명과 함께 찾아온 신구미학 사이의 경계에서 많은 갈등을 겪게 된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부작용과 부조리에 대해 비판적 사조가 팽배하던 시대에 르누아르 역시 이러한 시대상을 외면하지는 않았지만, 동시대작가들의 세계관과는 확실히 다른 그만의 세계관을 펼치는데, 그것은 "나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려고 그림을 그린다."라는 것이었다. 후에 살롱에서 성공을 거둔 르누아르는 1991년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라파엘로나 폼페이의 벽화에서 감동을 받게 되고 점점 인상주의와 멀어지며 <목욕하는 여인들>같은 작품을 그린다. 후에는 인상주의와 앵그르적 스타일을 혼합한 스타일로 조화를 찾아가며 완숙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일상의 행복 (Happiness of Daily Life)

▲ 피아노치는소녀들(1892)

힘들었던 사회현실을 잊게 할 만큼 그의 작품 속 도시인의 삶은 조화로운 일상의 환희에 가득 찬 사람들의 세상이다. 그 풍경은 몽환적이고 현실감이 없어 보이지만 그래서 더욱 동화 속 세계처럼 아름답다. <그네>, <시골무도회>, <피아노 치는 소녀들>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가족의 초상 (Portraits of Family)
젊은 시절 외톨이생활을 해 온 그에게 가정생활은 절대적 가치를 차지하였다. 그는 자신의 가족뿐만 아니라 지인들의 자녀를 묘사하는 데에도 깊은 애정을 담아내었다. <광대 복장을 한 코코(셋째아들 끌로드의 애칭)>, <가브리엘, 장 르누아르와 어린 여자아이>등의 작품에서 그의 가족에 대한 애정을 확인해 볼 수

▲ 광대복장을한 코코(1909)

있다.


여성의 이미지(Images of Women)
르누아르 예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테마는 르누아르의 여성상이다. 여성은 그의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나는 걸음마를 시작하기 전부터 여자들을 사랑했다네."라고 말할 만큼 르누아르는 여성을 좋아했지만, 그가 여성을 존중하지 않거나 육체적인 면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 의 작품들을 보면 그가 모델들에게 진심 어린 찬사를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앙리오 부인>, <보니에르 부인>, <줄리 마네의 초상>등 그의 화폭 속의 여인들은 모두 행복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 리오부인(1876)

 

욕녀(浴女)와 누드(Bathers and Nudes)
르누아르는 이탈리아 고전주의 미술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는 도자기 화가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르네상스 화가들이 그린 물의 요정 님프로부터 영감을 받은 님프의 누드를 자신의 꽃병 위에 그렸었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르네상스 거장들의 작품을 보고 돌아온 직후부터 그의 누드작업이 시작되었다. <바위에 앉아있는 욕녀>, <풍경 속 여인의 누드>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육체는 어떠한 에로티시즘도 내포하고 있지 않다. 관객과 시선을 맞추지 않고 있으며 누군가를 유혹하려 들지도 않는다.

▲ 풍경속여인의 누드(1883)

 

르누아르와 그의 화상들(Renoir and His Art Dealers)
르누아르는 화상들과 진정한 우정과 존중의 관계를 형성했다. 르누아르와 가장 많이 거래를 하며 후원해주었던 화상은 폴 뒤랑-뤼엘이였고 르누아르는 그에게 깊이 감사하며 그와 돈독한 우정을 유지하였으며 그 우정은 자녀 시대까지 이어졌다. <바느질하는 마리-테레즈 뒤랑-뤼엘> <폴 뒤랑-뤼엘의 초상>, <가스통 베르넴 드 빌레르 부부> 등의 작품에서 화상과의 우정을 증명하는 초상화들을 확인할 수 있다. 

▲ 바느질하는마리테레즈 뒤랑뤼엘(1882)

 

풍경화와 정물화(Landscapes & Still Lifes)
르누아르에게 있어서 정물화는 인물화를 위한 실험의 수단이었다는 설이 있다. 정물화와 풍경화가 르누아르의 작품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마르티그의 해변>은 그의 여행이 기억을 담고 있으며 <라일 정물화 여러개>, <장미> 등의 작품에서는 그가 붉은계열의 색채를 즐겨 사용했다는 사실을 확인해 볼 수 있다.

▲ 장미(1915)

앙베르 앙드레가 본 르누아르(Renoir seen by Albert Andere)
르누아르의 셋째아들 장 르누아르는 앙베르 아드레는 르누아르의 노년을 따듯하게 해주었던 사람이었다고 회상하였다고 한다. 앙드레는 르누아르의 작품을 진심으로 존경했으며 그와 동시에 그의 가족 또한 애정을 가지고 르누아르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르누아르의 초상>, <가족을 그리는 르누아르> 등에서 앙베르 앙드레가 그린 르누아르의 모습을 확인해볼 수 있다.

▲ 르누아르의 초상(1918)

 

르누아르의 종이작품(Works on Paper)
그의 뛰어난 데생 실력을 종이작품을 통해 엿볼 수 있다. <공놀이하는 아이들>, <모자장식> 등 아름다운 작품들이 많지만, 대부분이 미완성 상태이거나 명백한 습작 형태로써 남았다. 르누아르는 전시할 생각이 없이 자신의 만족을 위해 습작을 그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 르누아르의종이작품: 모자장식(1894)

“아름답게 그려야 해(Il faut embellir).” 그가 말년에 피에르 보나르에게 남긴 이 한마디는 르누아르의 예술세계를 단적으로 정의하는 동시에 그의 예술철학을 대변하는 말이다. 그의 작품 속에서는 어느 누구도 불행하거나 슬프지 않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행복하고 기뻐해야만 하는 세계, 그것이 바로 르누아르가 꿈꾸는 세상의 모습이고 그가 그림을 통해 그려내고 싶은 세상의 모습이다. 보모도, 청소부도,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도 그의 화폭 안에서는 아름답고 또 행복하다. 그의 그림을 보는 내내 입가에 행복한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보는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그림을 그린 화가, 르누아르. 감히 그가 그의 소망이었던 지상의 낙원 그리기를 달성한 화가라고 정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