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22.9.28 수 09:31
> 뉴스 > 기획마당 > 기획칼럼
     
올림픽, 얼마나 알고 계시나요?
2012년 07월 24일 (화) 박성민 기자 smpark@jkn.co.kr

 

올림픽, 얼마나 알고 계시나요?

 

70억 세계인의 대축제 런던올림픽 개막을 사흘 앞두고 있다. 많은 이들이 올림픽에 대해 얼마나, 어떻게 알고 있을까. 간략하게 정리해 봤다.

   

먼저 고대올림픽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정확히 고증되지 않았지만, 기원전 776년 앨리스 출신의 코로 에부스가 스타디온 달리기에서 우승했다는 문헌상의 기록을 근거로 통상 이때를 올림피아의 원년으로 본다.

이후 고대올림픽은 1200여 년 동안 계속됐다. 승자에게는 월계관이 쓰였고, 일정액의 상금도 주어졌다. 하지만, 고대올림픽은 그리스가 로마인의 지배를 받으면서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는데,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정한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올림픽 제전을 이교도들의 종교행사로 규정하고 서기 394년 폐지를 명령하는 칙령을 선포함으로써 고대올림픽은 제293회를 마지막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후 1896년 유서깊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개최된 제1회 대회에 참가한 선수는 13개국 311명으로 '인류평화의 제전'이라는 거창한 구호에 걸맞지 않은 작은 규모였다.

올림픽이 국제대회로서 면모를 갖춘 것은 1908년 제4회 런던대회 때부터였으며 이 대회에는 22개국 1999명이 20개 종목에 참가함으로써 대회규모가 획기적으로 확대됐고 각국이 처음으로 국기를 앞세우고 참가했다.

19세기 말에 역사학자인 피에르 드 쿠베르탱(Pierre de Coubertin)이 고대 올림피아 제전에서 영감을 얻어 근대 올림픽을 부활시켰다.

쿠베르탱은 "인간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척도는 그 사람이 승리자냐 아니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느 정도 노력하였는가에 달렸다. 따라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승리한다는 것이 아니라 정정당당히 최선을 다하는 일이다. 올림픽 운동은 세계에 하나의 이상을 심어주는 일이며 그 이상은 바로 현실생활 일부를 이루는 것이다. 그것은 육체의 기쁨, 미와 교양, 가정과 사회에 봉사하기 위한 근로, 이상 3가지이다."라고 주장했다.

이후 1·2차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아 3번이나 중단됐고 정치적인 문제가 개입되어 테러가 일어나는가 하면 대회를 보이콧하는 사례까지 빚어지기도 했다.

쿠베르탱이 말했던 원래 이념과는 반대로 올림픽이 정치 혹은 체제 선전의 장으로 이용될 수가 있었다.

1936년 하계 올림픽을 개최할 때 당시의 나치독일은 나치는 자비롭고 평화를 위한다는 것을 설명하고 싶어했다. 또 이 올림픽에서 아리안족의 우월함을 보여줄 생각이었으나 이는 흑인이었던 제시 오언스가 금메달을 4개나 따내면서 실현되지는 못했다.

 

선수 개인이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 표현한 일도 있었다.

   

멕시코 시티에서 열린 1968년 하계 올림픽의 육상부문 200m 경기에서 각각 1위와 3위를 한 미국의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는 시상식 때 '검은 장갑 인권시위'를 선보였고, 2위를 한 피터 노먼도 상황을 깨닫고 스미스와 카를로스의 행위를 지지한다는 뜻에서 급하게 인권을 위한 올림픽 프로젝트(OPHR) 배지를 달았다. 이 때문에 피터 노먼은 대회 뒤 조국 호주로부터 2년간 대표선수 자격을 박탈당했다.

국적과 인종은 달랐지만 노먼은 죽는 날까지 두 선수와 우정을 이어 나갔고, 호주 원주민 인권운동에도 앞장섰다. 차별받는 당사자가 아님에도 동료애를 발휘한 아름다운 사건이다.

또한, 쿠베르탱의 생각과는 달리 올림픽이 세계에 완벽한 평화를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실제로 제1차 세계대전 탓에 1916년 하계 올림픽이 취소되었고, 2차 세계대전 때는 1940년 하계 올림픽, 1940년 동계 올림픽, 1944년 하계 올림픽, 1944년 동계 올림픽이 취소됐다. 베이징에서 열린 2008년 하계 올림픽 개막식 날 그루지아와 러시아 간의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테러도 올림픽에서 공포의 대상이었다.

뮌헨 참사로 알려진 197295일 새벽, 독일이 통일되기 전 옛 서독인 독일 바이에른의 뮌헨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 때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인 '검은 9월단' 소속 테러리스트 8명이 올림픽 선수촌에 잠입해서 이스라엘 선수들이 묵은 숙소를 습격한 사건으로 이스라엘 선수 11명을 인질로 붙잡았다가 전원이 사망한 사건이다. 당시 미숙한 진압으로 말미암아 인질 9(선수 1명과 코치 1명은 인질로 잡기 이전에 살해), 테러범 5, 독일 경찰관 1명이 사망했으며 이 진압 작전 이전에는 인질들은 단 한 명도 죽지 않았다. 이들은 인질 석방 조건으로 이스라엘에 억류 중인 팔레스타인 정치범 200여 명의 석방을 요구했었다.

 

올림픽은 국제경기연맹(IF), 국가 올림픽 위원회(NOC), 각 올림픽의 위원회로 구성되며 IOC(국제올림픽위원회)4년마다 주최하는 국제 스포츠대회다. 2년마다 하계 올림픽과 동계 올림픽이 번갈아 열린다. 또한 패럴림픽(Paralympic)은 신체·감각 장애가 있는 운동선수가 참가하는 국제 스포츠 대회로, 장애인 올림픽으로 불린다.

의사 결정 기구인 IOC는 올림픽 개최 도시를 선정하며, 각 올림픽 대회마다 열리는 올림픽 종목도 IOC에서 결정한다.

올림픽 개최지는 해당 올림픽 개최 7년 전에 IOC 위원들의 투표로 결정된다. 개최지 선정에는 약 2년이 걸린다. 유치를 희망하는 도시는 우선 자국의 올림픽 위원회에 신청해야 한다. 후보 도시가 결정되면 후보 도시가 소속된 국가의 올림픽 위원회는 IOC에 개최 신청을 하고, 신청 후에는 올림픽 개최에 대한 질의 응답서를 보내야 한다. 이 질의응답서는 전문가들이 검토하여 신청 도시들의 잠재성과 계획을 평가한다. 전문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IOC 상임이사회에서는 신청도시 중에서 후보도시를 고른다.

평가조사단의 업무가 끝나면 후보지의 국가 위원들은 IOC 정기총회에 참석한다. 이 총회에서 IOC 위원들은 올림픽 개최지를 선정하게 된다. 투표가 끝나고 나서 개최지로 선정된 곳의 유치위원회가 IOC와 개최도시 계약서에 서명하면 공식적으로 올림픽 개최도시로 인정된다.

 

올림픽 종목은 총 33개 부문 52개 종목에서 약 400개의 경기로 이루어져 있다. 하계 올림픽은 26, 동계 올림픽은 7개이다.

심벌과 관련, 1949IOC 총회에서 채택된 올림픽 기는 쿠베르탱이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 마크를 본떠서 고안한 것으로 오륜으로 잘 알려진 올림픽 심벌은 파랑-노랑-검정-초록-빨강의 5개의 둥근 고리가 서로 얽혀 있으며 남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는 아메리카로 합쳐 있다. 원마다 아시아-아프리카-유럽-오세아니아-아메리카 등 5대륙을 상징한다.

파랑, 노랑, 검정, 초록, 빨간 고리에 흰색 바탕은 올림픽 기를 나타낸다. 이 색들이 선택된 이유는 모든 국기에서 적어도 이 5개의 색 중 하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기가 최초로 게양된 것은 1920년 제7회 앤트워프 대회 때였고, 23회 로스앤젤레스 대회까지 60여 년 동안 사용됐다. 그러다 1988년 제24회 서울 올림픽 대회부터는 우리나라에서 만든 '서울기'IOC 공식 기로 사용하게 되었다.

올림픽 성화는 인류평화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올림픽 상징의 하나로, 대회의 시작을 만방에 알리는 '신성한 불'이다. 근대 올림픽이 부활한 이래 이 성화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928년 제9회 암스테르담 대회 때였다. 이 성화는 독일의 IOC 위원인 테오도테 레발트가 고안해서 IOC가 채택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IOC의 정식 회원국이 된 날은 1947620일이다. 1988년 서울특별시에서 개최된 제24회 올림픽은 동·서가 한자리에 모이는 대축전이 되었고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북한은 '1국가 1NOC'만을 인정하는 IOC 규정에 막혀서 한동안 IOC에 가입하지 못했는데, IOC는 남북한을 별개의 국가로 인정하고 1963년 북한의 IOC 가입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북한은 1964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겨울올림픽에 처음 출전했는데, 이 대회에서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3m에 출전한 한필화 선수가 은메달을 따내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겨울올림픽은 유럽과 북미의 전유물로 두 대륙 이외의 선수가 메달을 따낸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올림픽에 대한 비판도 있다. 비판 중 하나는 올림픽이 지나치게 상업성과 연계되어 기존의 상업적인 스포츠 쇼와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쿠베르탱은 당시 고대 올림픽대회가 외부세력들이 올림픽 정신을 좀먹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IOC를 만들었는데 지금은 그 IOC마저도 심각하게 오염되었다.

올림픽의 초기 정신은 전쟁을 중단하고 세상을 풍요롭게 하려면 제전을 개최하여 우정을 두텁게 하는 것이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올림픽의 이 초기 정신일 것이다. 금메달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류평화의 제전'이라는 근대올림픽 정신에 걸맞은 역사를 써내려가는 한국 선수단, 메달을 못 따낸다 해도 스포츠를 통해 감동과 환희를 전할 수 있는 '국가대표',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그들에게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는 국민의 환한 모습을 지켜볼 수 있기를.

ⓒ 미네르바(http://minerva.cufs.ac.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청소년보호정책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로 107 사이버한국외국어대학교(02450) | Tel) 02-2173-2580 Fax) 02-966-6183 | 청소년 보호 책임자 : 조기석
Copyright 2004 Cyber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nerva@c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