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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의 아바타(Avatar)가 아닌 진정한 자신의 삶을 살고 싶었던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
소설 <빅픽처>를 읽고
2010년 10월 01일 (금) 중국어학부 백종현 insprt@yahoo.co.kr

   
 

Ⅰ. 들어가며

나이 서른, 인생의 기로에 선 나이. 미국 시트콤 <프렌즈>에서 서른 생일을 맞이한 주인공들이 즐거움과 우울함의 감정을 교차적으로 내뿜던 나이. 한편으로 전설의 프로레슬러 역도산이 스모를 버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프로레슬링에 입문했다던 나이.

서른 살이 주는 의미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으나 그것이 스물아홉이나 서른하나와는 다른 무게감을 갖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이제 서른 살 생일을 맞이할 즈음에 이른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저 흘러가는 인생 속에서 내 나이 서른임을 자각하게 되면, 무엇인가 앞으로 나가갈 모멘텀을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조바심에 빠지게 되곤 한다.

학부를 졸업한 지 몇 년 되지 않아 사이버외대에 다시 적을 두게 된 것도 이러한 조바심의 발로일까? 그간 제대로 배워보자고 마음만 먹다가 시작도 제대로 못했던 중국어를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중국어학부에 편입하게 된 것도 어쩌면 이렇게 서른의 의미를 되새김질하다 당도한 결론일지도 모른다.

서론부터 서른의 의미에 대해 말이 길었는데, 그렇다고 서른이란 나이가 가진 사회적 의미를 고찰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제 갓 입학한 내가 학교로부터 선물 받은 책한 권을 읽다보니 진정한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새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는 말을 꺼내고 싶었던 것이다.

Ⅱ. 소설 속 이야기

1. 나이 서른여덟의 변호사, 벤자민 브래드포드

영미계 대형 로펌, 그 중에서도 월스트리트의 대형 로펌들은 미국 로스쿨 졸업생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로망이다. 사회초년병이 월급쟁이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연봉은 물론 월스트리트 변호사라는 직함이 주는 상류층의 생활이 보장된 곳이기 때문이다.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Douglas Kennedy)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빅픽처(The Big Picture)>는 로망의 대상인 월스트리트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주인공 벤(벤자민)은 서른여덟의 나이에 30만불이 넘는 연봉을 받으며 교외의 근사한 주택에서 가족과 함께 남부러울 거 없이 생활하는 변호사 겸 사진가이다.

그러나 이런 벤이 애초부터 변호사가 되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월스트리트의 증권회사 임원인 - 즉 부유한 - 아버지로부터 로스쿨이든, MBA든 전문직을 택해 돈을 벌게 되면 사진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오롯이 사진가로서만 성공하고 싶었던 벤이었다. 그러나 사진가게 상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도 사진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던 햇병아리 청년의 꿈은 거물급 손님들 앞에서 아무런 존재감 없는 자신의 처지를 자각하면서 사그라지고 만다. 그리고선 돈을 벌어 사진 일을 더 잘하기 위해 로스쿨에 진학하기로 한다. 벤이 파우스트와 손을 맞잡은 첫 순간이었다.

벤은 명문 뉴욕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아버지의 주선으로 월스트리트의 대형로펌에 취직한다. 취직 후 신탁부서에 자리 잡은 벤은 그곳 신탁부서에서 계약서나 작성해 주는 지루한 일을 반복할 운명에 처하게 된다. 그런 벤이 시작한 유일한 취미는 사진기를 수집하는 것이다. 3000불에 이르는 고급카메라도 거리낌 없이 살 수 있는 수입이 되기에 벤의 집 지하실에는 이미 4만5천불이 넘는 각종 카메라들이 골동품처럼 쌓여있다.

변호사가 되어서도 열렬히 사진가가 되기를 희망했던 벤에게 어느 날 인생전환의 사건이 다가온다. 바로 그의 아내, 베스가 이웃집 남자와 외도를 한 장면을 목격하게 된 것. 이웃집 남자 게리는 부모님이 물려준 신탁연금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사진가 지망생이다. 벤은 그를 삼류라고 폄하하는데, 베스는 오히려 게리의 열정에 반한 것이다. 베스의 외도장면을 목격한 벤은 게리의 집을 찾아가게 되고, 그 집 지하실에게 우발적으로 게리를 살해하게 된다. 약속된 상류층의 삶이 송두리째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그 후 소설은 놀라운 방향으로 전개된다. 명석한 두뇌의 벤을 괜히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프리즌브레이크>의 스콧필드, <도망자>의 해리슨 포드와 같은 인물들의 용의주도함을 뺨치는 치밀한 계획으로 벤은 게리의 죽음을 은폐하고 자신은 먼 바다에서 요트사고로 죽은 것으로 위장한다. 벤이 게리로 둔갑한 순간이었다.

2. 게리가 된 벤

그 후 게리가 된 벤은 자신이 살던 동부의 업타운을 떠나 찌그러진 자동차 한 대를 몰고 서부로 서부로 정처 없는 길을 나선다. 한동안 고속도로 위의 방랑자처럼 보내던 벤, 아니 게리는 어느 날 몬태나 주의 마운틴폴스라는 3만 인구의 조그만 시골동네에 정착하게 된다.

거처가 마련된 후 소일할 것이 필요했던 벤은 사진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그렇게 몬태나 대자연의 광활함과 주민들의 애환이 담긴 사진촬영에 몰두하던 즈음, 그의 사진이 지역신문사<몬태난> 기자를 통해 그 신문에 특집으로 게재되면서 벤은 사진가로서의 입지를 키워나간다. 그러던 중 우연히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진화 현장을 필름에 담게 되면서 그의 사진은 미국 전역에 타전되게 된다. 화재와 사투를 벌이는 소방관의 모습을 통해 “환경재난에 맞선 인간의 희생을 감동적으로” 그린 사진이었다.

그렇게 벤의 사진은 <뉴욕타임스>등의 각종 신문의 1면을 장식하게 되면서 벤은 한 순간에 스타 사진가로 등극하게 되었다. 그러나 원치 않은 유명세 속에 자신의 원래 신분이 탄로 날 것을 두려워하는 게리, 아니 벤은 우연스러운 교통사고로 인한 죽음으로 가장하여 마운틴폴스에서 만난 연인인 앤과 함께 몬태나를 벗어나 제3의 인물로 살아가게 되고 그렇게 소설은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Ⅲ. 나오며 : 진정한 삶이란 무엇인가?

사진가를 꿈꾸는 변호사 벤은 금전적 여유가 생기면 사진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변호사가 되었다. 그러나 그가 직면한 엄연한 현실은 교외에서 거주하며 시내 로펌으로 출근하는 쳇바퀴 같은 생활, 가족과의 불화, 의미 없는 일상들뿐이다. 이런 벤이 우연이 살인사건에 휘말리면서 전혀 다른 인생이지만 한편으론 자신이 원했던 인생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이 소설이 추구하는 이야기의 중심화제이다.

결과적으로 게리로 위장한 벤이 보여준 사진가로서의 재능은 놀라운 것이었다. 휴머니즘으로 무장한 뛰어난 보도사진으로 미국 전역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도망자 벤이 갈 수 있는 곳은 거기까지였다. 자신이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더 이상 없었던 것이다. 다시 도망자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벤의 운명 속에서 짧지만 굵게 뿜어져 나온 그의 사진적 재능은 인생의 갈림길에서 파우스트에게 손을 내민 초년의 선택과 함께 다시 어둠속으로 사라질 뿐이었다.

연민에 잠기게 되는 결말이지만, 소설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 것. 사진가가 되고 싶었던 벤,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아내 베스처럼 꽉 막힌 밀실 같은 삶을 살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들의 삶은 자신의 꿈을 등지고 마치 아바타가 된 양 원치 않은 길을 걸어가야 하는 틀에 박힌 삶이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인생의 큰 즐거움은 미래를 꿈꾸는 것이고 그 꿈을 실현해 나가는 것인데, <빅픽처>에서의 벤은 그만 이런 큰 즐거움을 포기하고 파우스트에게 손을 내밀고 말았던 것이 실책이라면 실책일 것이다. 어쩌면 벤이 “빅픽쳐”를 보지 못한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서두로 돌아가 내가 꺼낸 나이 서른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 본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파우스트가 내민 손을 붙잡고 온 길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인생의 모멘텀이라고 여겨지는 지금 시기를 걸으면서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 신명나는 나의 꿈을 생각해 보게 된다. 중국어를 제대로 배워서 멀리 나는 새가 되고자 하는 내 꿈이 떠오른다. 파우스트가 조종하는 아바타가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을 산다는 것. 그 큰 그림을 안고 멀리멀리 날아가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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