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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온 이야기
2005년 09월 01일 (목) 사이버외국어대학교 최종찬 학장 jcchoi@hufs.ac.kr

산에 오르면 무던히도 감성이 무뎌진다. 소소한 아름다움에 가슴이 콩닥거리던 일도 먼 추억이 되고 강한 자의 고함소리에 소침하던 일도 빈 웃음으로 흩어지고 낙엽의 화사함에 만추의 눈물을 내비추던 일은 남의 소관이 되어버린다. 삶의 깃발이 나부낄 때마다 도저한 심경으로 바람을 맞던 순간들도 산정의 뜨거운 여름 햇볕에 쉽게 녹아내린다.

그러면 이 길지 않은 동안에 둔해진 감성은 유별난 생각을 찾는다. 한밤의 영화도 시큰둥하고 한낮의 나들이도 피곤이 앞설 테니 그저 폭주족처럼 음악을 크게 틀고 여름하늘에 우박이 떨어지는 대낮을 기대한다. 귀밑으로는 무심한 구름이 흐르고 멀리 맞은편으로 보이는 산봉우리에는 업힌 꼽추처럼 바위 몇 덩어리가 고개를 숙였다. 매미소리만이 세상 아우성의 전부인양 귀를 가득 채웠을 때 문득 차라리 이 소리구나 싶다. 살아 이기려고 악쓰는 외침이며 노랫말처럼 귓속을 간질이는 연인의 속삭임이 한꺼번에 질긴 물결을 만드는 오후.

산 위에 오르면 너무나 가볍게도 옛일들이 부상한다. 아마도 산으로 인해 무뎌진 감성이 과거의 부담을 덜어주는 듯하다. 그러면 과거의 인상적이었던 모든 감동과 실수와 분노의 행적은 곰씹어보아야 할 삶의 사례가 된다. 감정 없이 그 기록들을 꼼꼼히 짚어보며 선계(善計)하는 여유가 마음을 실하게 한다. 노자는 ‘선계는 불용주책(不用籌策)’이라며 눈앞의 손익에 들뜬 세속의 사람들을 가르치지만 나는 선계의 방편으로 한가함 속에 누리는 삶의 뒤돌아봄을 꼽는다. 이미 계산이 필요 없어진 일들에 대하여 계산하여 봄. 그 계산에는 사심이 없다.

먼 타지에서 힘든 시간을 보낼 시절 함께 그곳 생활을 했던 붕우가 당시에 나로부터 들었던 인상적인 말을 나에게 들려준다. 둘 사이의 이러 저러한 이야기 끝에 내가 ‘난 계산을 하는 사람이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 말이 뭐가 인상적인가 뒤치니 계산하지 않는 친구인 줄 알았는데 내 입에서 계산적 인간임을 고백하는 소리를 듣고 귀가 있어 소리를 듣는구나 생각했다는 것이다. 당시에 내가 생각한 계산과 그가 이해한 계산은 물론 달랐다. 그는 계산을 손익을 따지는 암수 정도로 정의하는 젊은이였는데 외로운 타지에서 계산을 운운하는 나의 말씀이 귀뺨을 때리는 찬바람으로 느껴진 것이다. 당시 나의 계산은 철없는 친구에게 나의 바닥을 보여서라도 계산이 필요한 세상을 보여주고픈 의도가 있었다. 그는 그런 나의 계산을 읽지 못한 것 같다. 물론 그는 지금까지도 계산을 모르는 사람이다.

계산은 여러 모양과 형태로 하루를 떠돌아다닌다. 하지만 선계의 으뜸은 계산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다만 올바른 자리에 처하는 조건이 따른다. 어떤 일이든 중심이 제 자리에 있으면 그것으로 인해 관련된 것들이 순탄하므로 계산이 필요 없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에게는 그 자리가 어디인지 제대로 알기가 쉽지 않으며 설사 안다한들 기분으로 마땅한 자리는 아니다. 멀리 돌아가는 것 같고 멈춘 것 같은 자리들이 대개의 경우 그런 자리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마음이 조급한 자는 그런 자리에 머물기가 쉽지 않다. 주책을 사용하길 즐기는 자도 처소의 마땅함으로 일을 풀려고 하지 않는다. 특히 자신의 영특함을 믿거나 민첩한 감각을 즐기는 자일수록 주책은 가깝고 매력적이다.

마땅한 처소가 꺼려지면, 어려운 일을 당하여 최소한 사람을 찾아야 한다. 모든 일은 사람의 소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혜가 있어야 사람을 알 수 있으며 게다가 자기를 아는 밝음도 있어야 사람을 찾을 수 있다. 허니 이조차도 차라리 쉬운 일이 아니다. 누가 마땅한 자리에 있는지도 알아야 할 뿐더러 그 사람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마땅한 명분을 전달해야 한다. 이런 작업은 많은 노력을 수반할 뿐만 아니라 부담도 따른다. 사람 자체가 때로 주책이 되기 때문이다. 사실 계산하는데 있어 주책은 필요한 것이며 나쁜 것도 물론 아니다. 다만 너무 주책에 의존할 경우에 발생하는 부작용을 경계함이다.

가장 미련함은 일의 헤아림을 일로써 도모하는 것이다. 부지런하고 열심인 것처럼 보이나 진척이 없고 실타래만 더 엉킬 수 있다. 물론 올바른 처소에서 올바른 손길을 타는 일이라면 더할 나위 없지만 그런 것들이 결핍된 일이라면 아니함만 못하게 된다.

마땅한 처소도 사람의 구별도 남의 이야기인 듯 하면 조금은 손해 본 듯 둔하게 사는 것이 그나마 상책이다. 손해를 보려니 하면서도 억울한 심정일 때는 세상 공평함의 이치를 인정하고 스스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세상만물에 주어진 역할과 복은 그를 준 자의 덕이 두루 전개되어 개개에게 더함과 덜함이 없다. 다만 개개가 그렇다고 생각하거나 상황에 따라 굴곡이 있음을 느끼지 못할 따름이다. 그러하니 주관을 갖고 꾸준히 자기의 길을 감이 중요하다. 산 정상은 우러러 보이지만 물도 없고 그늘도 없고 바람만 거세다. 산 아래는 계곡이 있고 그늘이 있어 좋지만 두루 살필 수 없으니 세상이 다 보이지 않는다. 그 사이로 계곡물은 목마름을 적시며 흘러내려간다.

여기까지 오니 친구는 그저 자족이 평안의 으뜸이라고 일갈한다. 만족할 줄 알게 되면 세상이 부유해지는 법이다. 만족한 마음이 감사하는 마음을 주고 감사하는 마음은 욕심을 덜어주고 그러면 앞을 길게 보려는 마음이 생기고 그로 인해 참는 마음이 강해진다. 참는 마음은 욕심을 누를 줄 알고 욕심이 눌리면 그칠 줄 알게 된다. 멈출 줄 아는 사람은 위태로운 지경까지 가지 않는다.

오늘도 산에서 마음을 타고 함께 내려온 이야기는 등반객의 호연(浩然)을 삭이는 대포 집에서 잠시 머문다. 넉넉한 친구의 얼굴이 새삼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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