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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에 대한 몇 가지 단상
2005년 10월 01일 (토) 영어학부장 성 은경 eks@cufs.ac.kr


지난여름 영국에 갔더니 제일 먼저 눈에 띤 것은 자동차가 작다는 점이다. 모두들 우리 눈으로 보자면 ‘소형차’를 주로 끌고 다니고 있었다. 좁은 길이 많아서 그런지 아니면 실용적인 생활 태도가 몸에 배서인지는 잘 모르지만 작은 차가 참 많았다.

반면에, 미국은 실로 자동차 전시장이라고 할 만큼 온갖 종류의 다양한 자동차들이 거리를 누비고 다닌다. 우리와 다른 점은 어떤 자동차를 타고 다니든, 그것을 보고 차 탄 사람의 품격과 연관하여 생각하는 사람이 우리에 비해 훨씬 적다는 점이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타고 다니는 차에 꽤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지체 높은 분이 작은 차를 타고 다니는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생각하는 분위기다. 신용에 문제가 있는 사람일수록, 비까번쩍한 차를 몰고 다녀야 의심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골프장이나 호텔에 소형차를 몰고 나타나서는 경비원들로부터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도 한다.

지난 97년 미국에 유학을 떠날 때 우리 가족은 87년형 자동차를 탄 지 꼭 10년 만에 폐차하고 떠났다. 겉으로는 그리 많이 낡지는 않았지만, 여기저기 잔고장이 잦았던 차였기에, 미련 없이 폐차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미국에 막상 도착해 보니 이보다 낡은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수두룩했다. 지체 높다고 생각해 온 교수들조차 낡고 작은 차를 아무렇지도 않게 몰고 다니고 있었다. 반면 일부 유학생들은 멋진 새 차를 폼 나게 끌고 다니고 있었고, 어느 누구도 이런 일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우리 가족은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아무 분위기를 모른 채 우선 급하니까 새 차부터 하나 샀다. 97년형 소나타였다. 그러나 자동차 없이는 꼼짝도 못하는 미국 사회에서, 차 한 대로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어서 마침내 차를 한 대 더 사기로 먹었다. 그리하여 세컨드 카를 하나 장만해서 주로 남편이 타고 다녔는데, 그 차는 다름 아니라 87년형이었다. 차 값으로 꼭 1,000불을 지불한 싸구려 차였다. 이 차는 한국에서 폐차하고 온 차와 연식은 비록 같았지만, 눈이 많은 지역에서 달리던 차라서 차체가 염화칼슘에 심하게 부식되어 외관이 훨씬 형편없는 차였다. 더구나 사던 날 주인에게서 ‘휘발유 탱크 위쪽에 작은 구멍이 나 있으니까 절대로 휘발유를 절반이상 넣지 말라’는 주의를 들었던 차였다. 그 차는 가끔 잔고장이 나서 말썽을 피운 적은 있었지만, 큰 탈 없이 우리 가족 모두가 요긴하게 썼다. 미국 사람 모두가 그렇듯이, 우리도 남의 눈을 의식해서 ‘창피하다’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러다가 2년 후에 400불을 주고 다시 팔았다. 물론, 휘발유를 절반이상 넣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결국은 인식 차이인 것 같다. 미국에서 자동차는 우리로 말하면 늘 신고 다녀야 하는 ‘구두’ 정도가 아닌가 싶다. 우리의 경우에도, 최고급 구두만을 신고 다니면서 상대방이 무슨 구두를 신고 다니는지 눈 여겨 보는 사람도 있긴 할 것 같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방이 최고급을 신었는지 허름한 구두를 신고 다니는지 별로 의식하지 않고 지낸다.

자동차 역사가 훨씬 오래되었고, 자동차 없는 생활을 상상도 못하는 미국에 있어서 자동차는 우리에게 있어서의 ‘구두’처럼, 생필품 중의 생필품이 된 것 같다. 너무나 가까운 생필품이다 보니, 이제는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 별로 의식하지 못하게 된 것 같다.

십부제로도 부족하여 요일제를 시행할 만큼, 너무나 빠르게 늘어 가는 자동차를 보면서, 머지않아 우리나라에도 자동차 크기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길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미국에서 짧은 기간 동안 지내게 되는 사람들도 보통은 차가 필요하게 된다. 그리하여 자동차를 사는 일이야말로 유학생 입장에서는 가장 먼저 해야 할 큰 거래(deal)가 된다. 내 경험으로는, 2, 3년간 짧게 지내고 돌아 와야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권할 만한 차종은 우리나라산 ‘중고차’였던 것 같다. 가격과 성능을 함께 생각할 때, 우리나라 중고차가 으뜸이었다. 이 말은 곧 우리나라 ‘새 차’를 뽑는 것이 별로 좋은 선택이 되지 못했다는 뜻도 된다. 그만큼 당시 한국 차는 쓰기 시작하면서 가격이 엄청 빠르게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된다. 일본제는 중고차라고 해도 우리나라 차만큼 값이 빠르게 떨어지지는 않았다. 조금 속이 상하는 일이긴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 차에 대한 평가는 성능에 비해서 그리 높지 않았다.

다행히 지금은 소나타도 세계적인 명차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차가 외국 거리를 누비고 다니고, 또 그 차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만큼, 한국인 입장에서 신나는 일은 없는 것 같다. 한국에 있을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지만, 외국에 나가는 순간 갑자기 소수(minority) 민족으로 취급받고, 그것도 유색인종 중 하나로 분류되기 때문에 괜히 어깨가 움츠러들기 쉽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자부심을 높여 주는 것은 오직 우리나라 사람과 경제와 제품에 대한 평가뿐이다.

내가 미국 생활을 시작했던 그해 말에 우리나라에는 갑자기 IMF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사태가 터졌다. ‘국가 부도’라고 하는 무시무시한 공포가 국내에도 팽배했었지만, 외국에 나가 있는 입장에서는 더욱 더 절박하였다. 친정의 몰락을 보는 것만큼 시집 온 며느리 입장에서 참담한 일이 또 있을까. 함께 공부하고 있던 외국 학생들이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우리나라 경제에 대해 이것저것 물을 때마다 몹시 당황스러웠고 주눅이 들었다.

이렇게 비참한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던 미국 델라웨어 주 우리 동네에 어느 날 생각지도 않았던 낭보가 날아들었다. 다름 아니라 박 세리라는 나이어린 소녀가 갑자기 여자 프로골프 챔피언으로 혜성처럼 나타났다는 소식이었다. 박 선수가 최초로 우승을 차지한 그 골프장은 우리 집에서 차로 10분 남짓 떨어진 몹시 가까운 곳이어서 우리의 감동은 더욱 컸다. 교민들도 모이기만 하면 박 세리 선수 이야기를 하면서 한껏 구겨진 자존심을 다시 추스를 수 있었다. 나는 그 해 미국의 주요 TV 방송에서 몇 시간씩 생중계 되는 박 세리 선수의 늠름한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위안을 느꼈는지 모른다. 요즘 박 선수가 슬럼프에 빠져 있어서 안타깝지만, 당시의 박 세리 선수는 적어도 나에게는 참으로 위대한 존재였다. 그저 빠른 시일 내에 박 선수가 본래의 위대한 모습을 되찾기를 고대할 뿐이다.

어쨌건 외국에서 지내다보면 자주 우리나라를 돌아다보게 된다. 우리나라 사람이나 국산 제품들을 눈여겨보면서 기뻐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자동차가 한 대 지나가면 나도 모르게 어떤 사람이 운전하고 있는지 눈길이 간다. 누구나 한국에서 지낼 때보다는 확실히 애국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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