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토요일 오후는 나에게 중요한 날입니다. 학교를 가지요. 네, 배우러 갑니다. 벌써 그 동안 많이 정들었던 학우님들과 존경하는 교수님들을 뵈려 갑니다. 날새기 전 평소보다 조금 더 느긋하게 새벽 마라톤 복장을 하고 한강변으로 나아가 두 시간여 한 바탕 뜀질을 합니다.

코 굼기의 들숨, 날숨이 너무나도 상쾌합니다. 한들거리는 강변의 마른 나무 가지가 밤새 안녕! 으로 반가운 고개 짓을 합니다. 요염하니 가는 허리를 비틀며 눈웃음을 흘립니다.

동녘에 붉게 떠오르는 아침 태양이 찬란한 희망을 무한정 쏟아 내립니다.
네, 그래서 이 새벽 뜀 길에 내가 이름을 붙여 주었지요. 에스퍼란자스 뜀 길, 네, 희망이라는 뜻의 이름이며 에콰도르 민속 음악 제목입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지요.
남미 앤디스 산맥 어느 골짜기, 구름이 잠시 멈춰 해찰하고 있는 곳,
골짜기 살랑 바람이 잔물결 이루며 푸르른 잔디를 간질이는 곳에 치렁치렁 민속치마 걸치고 서 있는 산골 처녀의 순수 영혼을 연상시킵니다.

점심밥을 먹고 학교에 갑니다.
지하철에서 내내 읽고 있던 책장을 덮고 볼품없는 지하철 1 호선 정거장에 내립니다. 처음에는 작고, 세련되지 못한 간판, 지저분한 승객 이동통로, 역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초라한 행색을 가진 학교 역 건물과 주변에 선뜻 애정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루하루가 지나고 몇 번을 지나다보니 , 이곳도 정이 들어갑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독일의 하이델베르크 정거장 앞도 이만하니 조그맣고 초라한 것 같았습니다. 미국의 하버드 대학교 앞 전철 정류장도 이보다는 낫지 않았던 것 같았습니다. 지저분한 계단, 인도를 점령한 상인들의 먹을거리들 숲 사이를 뚫고 요리조리 몸을 틀어대며 학교를 향해 천천히 걸어갑니다.

단 것을 좋아하는 나는 학교 앞 던킨 도우넛츠 가게를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맛이 있습니다. 커피 한 잔과 함께 곁들여서 먹는 도우넛의 달콤함, 좁은 의자지만 내 엉덩이를 다 받쳐주고, 작지만 내 두 다리를 다 넣을 수 있을 만큼의 공간을 주는 작은 탁자에 잠시 앉아 창유리로 보이는 행인들의 모습도 관찰 하곤 합니다. 운이 좋아 같이 등교하는 학우님들을 만나면 제가 청해서 같이 들어가 먹기도 합니다.

조막만한 얼굴을 가진, 귀 밑 머리 몇 개가 발그름한 볼에 흘러 내려 온 여드름 있는 아르바이트 여학생이 세련되지 못했으나 그래서 더 살가운 미소로 나를 반갑니다.
어서 오세요, 손님. 얼마 받았습니다, 손님. 잔돈 여기 있습니다, 손님.
감사합니다, 손님. 안녕히 가세요, 손님…….
손님, 손님, 손님 소리는 얼른 먹고 늦지 않게 들어가서 강의실 맨 앞에 앉으라는, 나의 학구열을 부추기는 불쏘시개로도 들립니다.

학교는 참 좋습니다.
여기저기 젊음의 풋 향기가 가득해 도처에 양의 기운이 넘실댑니다. 마음 같아서는 주중 내내 이렇게 와서 강의만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영국문학과 , 미국문학을 좀 더 깊이 구겨다 보고, 신경 하나 안 쓰고 좔좔 영어를 말하며, 기가 막힌 세련된 영어 표현으로 내 주위 친구들의 시샘을 한 몸에 받고 싶습니다.

교양으로 오묘한 중국의 고전도 다시금 새겨보고, 발칸의 9 개국이 끊임없는 역사의 질곡 속에서도 어떻게 그렇게 찬란한 문명을 이루어 놓았는지 더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담도, 제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극을 원어로 줄줄 외우고 주절댈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제 아내를 깜짝 놀라게 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아직은 불이 켜지지 않아 어둑어둑한 복도를 길게 질러 강의실 문 앞에 이르렀습니다. 어느 분이 고맙게도 가지런히 정렬 해 놓은 책상에 책보를 올려놓고 복도의 자판기로 가서 커피 한 잔을 뽑습니다. 강의를 듣기 위한 일종의 저의 준비운동이기도 하거니와,
존경하는 교수님께 지금부터 저는 강의를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후학으로서의 예를 갖추는, 나만의 작은 의식이기도 합니다.

한 분, 두 분, 정든 학우님들의 모습이 어두운 복도 끝에서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반갑게 악수도 하고, 목례도 하고, 손도 바짝 들어 나불, 나불 반가움을 표합니다.

토요일 오후는 학교 가는 날, 학교 가서 정든 얼굴, 반가운 얼굴, 학우님들을 뵙는 날, 그리고 존경하는 교수님들이 놓아 주시는 성스러운 학문에로의 디딤돌을 밟아 가며 느리지만 멈춤 없이 채워지지 않은 지적 호기심을 채워가는 날, 이렇게 보냈던 지난 학기, 다시 새 학기가 시작되는 3 월이 기다려집니다.
나는 토요일이 좋습니다.

나의 자랑스러운 사이버외국어대학교 가는 토요일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