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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아래 첫 동네
2006년 06월 01일 (목) 언론홍보학부 김병철 교수 kbc@cufs.ac.kr

이맘때쯤이면 생각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5, 6년 전의 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신문사에 근무하고 있을 때의 얘기입니다. 데스크의 지시로 소년 소녀 가장 취재를 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여느 때처럼 취재 수첩을 들고 상왕십리 곱창 골목을 찾아갔습니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3층 건물 옥상에 오르니 이내 숨이 찼습니다. 전화로 들은 대로 옥상 쪽으로 난 쪽문을 열고 소년이 있을 듯 한 옥탑방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빠듯한 살림집들이 내려다보이는 옥상 위엔 빨래 줄에 걸린 허름한 옷가지들이 바람에 날릴 뿐 옥탑방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 내가 잘못 찾아온 게 아닌가 싶어 계단을 따라 다시 내려가다가 문득 계단 위쪽으로 문이 하나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혹시나 싶어 열어 보니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허약한 모습의 부인이 몸져 누워있었습니다. 소년의 어머니였습니다.

OOO(15세·서울 OO중학교 2학년). 소년은 계단 한 켠 위로 새집처럼 위태롭게 올라앉은 2평짜리 단칸방에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약속 시간을 지나 오후 5시가 가까워 오는데도 물 한 컵으로 아침을 때우고 나갔다는 소년은 아직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신열을 앓고 있는 어머니만이 혼자서 빈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생후 한 달 만에 맡겨진 남의 집 주소를 따라 집에서 멀리 떨어진 OO동에 있는 OO중학교로 배정이 돼 등하교 때마다 전철을 바꿔타야 하는 먼 길을 통학하고 있었습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5월의 가냘픈 햇살을 비집고 소년이 계단을 따라 걸어 올라왔습니다. 앳된 사춘기 소년이었습니다.

소년이 이곳 옥탑방의 가장이 된 것은 1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13년간 떨어져 살던 어머니가 포장마차를 하며 모은 돈으로 어렵게 장사를 시작했지만 사채를 잘못 쓰는 바람에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나앉게 되면서부터였습니다. 소년의 아버지는 소년이 태어나기도 전에 집을 나갔습니다. 어머니 혼자 소년을 낳아 아는 사람의 소개로 핏덩이를 남의 손에 맡긴 채 하루 4시간씩 잠을 자며 억척스레 포장마차를 했습니다. 커피도 팔고 우유도 배달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모은 돈으로 어머니는 2년 전 아들과 13년 만에 처음 만나 음식점을 시작했습니다. 모자의 첫 만남은 조금 어색했지만 소년은 이때가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습니다.

가게를 내면서 2500만원의 사채를 얻어 쓴 것이 화근이 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자와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모든 돈을 날리면서 악몽 같은 시간들이 시작됐습니다. 살림살이와 함께 길거리로 내동댕이쳐진 어머니는 신경 쇠약과 고혈압으로 몸져눕고 말았습니다. 소년은 이때부터 이웃집 아저씨가 건물 계단위에 마련해준 3층 옥탑방에서 생활해왔습니다. 소년은 동사무소에서 지원해 주는 20만원으로 생활을 꾸려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시간제로 가끔씩 식당일을 하곤 했지만 잦은 구토와 불면증으로 극도로 몸이 쇠약해진데다 허리 근육까지 손상돼 오래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장 힘든 사춘기를 보내면서도 소년은 한 번도 불평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어머니 몰래 울어야 할 때도 많지만 결코 내색을 해본 적도 없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소년이 더욱 측은하고 안타까울 뿐이라고 했습니다. 소년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아는 형의 소개로 OO교회에 출석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모르고 자라온 소년에겐 하나님의 사랑이 삶의 전부였습니다.

학교에서 마련해준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는 소년은 아직 무엇이 되고 싶다고 마음먹어 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자신과 같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 자신의 바램이라고 했습니다. 도저히 그냥 일어설 수 없어서 지갑에 있던 모든 돈을 꺼내주고 편집국에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아 기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자꾸 눈물이 나서 기사를 쓸 수가 없었습니다. 10년 넘게 기자 생활을 하면서 울어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5-6년이 흘렀습니다. 5월이 되면, 사는 것이 힘들고 어렵다고 느껴질 때, 내가 너무 편하게 살고 있다고 느껴질 때, 가끔씩 소년의 얼굴이 떠오르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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