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서 북으로 올라가는 E16번국도 후반부에서 만난 게이랑게 피오르드의 위용은 장관이었습니다. 유람선을 타고서 2 시간 여 계곡을 따라 승선 인원 200여 명을 태우고 거울 위를 지나가는듯한 부드러운 항해는 내륙의 바다가 아니면 도저히 맛 볼 수 없는 기가 막힌 그림, 대자연만이 줄 수 있는 황홀함의 극치였습니다.

해발 1,300 여 미터 고산에 바닷물이 들어와 우리가 지나가는 계곡 양안에는 산골짜기에서 쏟아지는 폭포의 직 낙하 길이가 200 여 미터, 피오르드의 바닷물 속에 잠긴 골짜기의 깊이가 1,100 여 미터, 다시 말씀드리자면 저는 수심 1,100 여 미터 바다 속 바로 그 위를 항해하며 위로는 산의 나머지 200 여 미터의 폭포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토록 깊은 골짜기의 물은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만년설 녹은 물을 받아 수 억만 년을 이어 내려온 호수는 그 색깔에서 벌써 억 만량의 무게를 띄고 있어 햇볕조차 범접을 못하고 산언저리 주위만 서성거리고 있었습니다. 속인의 눈으로는 이 광경이 너무나 경건해서 감히 숨을 내 쉴 수가 없었습니다. 이토록 조화스런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들어주신 신에게 경배를 드리고자 저절로 두 손이 모아졌습니다. 일찍이 이곳으로 발걸음을 하셨던 우리나라 서 정주 시인이 이곳이 바로 천당이다 ! 라고 갈파하셨던 곳, 바로 그곳에 저는 지금 서 있습니다.

피오르드 항해 중 말을 잊고 저는 생각해 봅니다.
우리의 주위는 매 분, 매 초가 숨 가쁘게 변화하고 있는 듯 하지만 내가 중심만 잡고 있으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이 우주의 주인이고 나를 지배하는 건 나 자신이라는 신념만 굳건히 가지고 있으면 태산준령이 무너져도 겁날 게 없다 생각합니다. 천지가 요동을 쳐도 꿈쩍 안 할 1,100 여 미터 바다 속 깊이의 포용력으로 나는 이 세상을 안고 살아가려 합니다. 200 여 미터의 직각 낙하 폭포의 에너지로 지치지 않고 대양을 향해 나아가는 피오르드의 에너지를 내 근육에 한 번 내장해서 살아보려고 합니다. 저는 피오르드의 장관을 보며 그 모습을 닮고 싶습니다.

생업에 학업에 바늘 하나 더 들어 갈 자리 없이 빠듯한 하루, 더 이상 어떻게 쪼개어 쓸 시간이 없어 망연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만, 내가 바라보는 저 노르웨이 만년설을 생각해보며, 1년에 몇 밀리미터도 안 되게 녹는 얼음이 모이고 모여 억 만년을 흘러 이어지는 저 세월의 장구함에서 나는 기다림이나 서두르지 않음을 배워 보려 합니다.

생업에 쫓겨 학업이 버겁다는 생각이 들 때, 쌓인 피로와 늦은 밤 쏟아지는 잠 때문에 이번 학기 학점포기의 유혹이 들 때, 학교에 가는 날 왕십리역과 이문역의 초라한 지하철 정거장 플라스틱 벤치에 앉아 별로 유쾌하지 못한 먼지바람을 맞으며 구름 낀 하늘 한 조각을 바라보다 괜스레 슬퍼져서 보던 강의록을 집어 던지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3 년 전 사이버 외국어 대학교의 첫 입학식 때 그 때의 초발심을 다시 새기며 혼잣말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힘을 내자 힘을. 서두르지 말고 그렇다고 나태로 너무 늦게도 말고... 한 발 그리고 또 한 발, 앞으로만 가자! 내가 갈 수 있는 곳이 어디까지인지 가다가 부러질지언정 휘이지는 말고 가보자 ! 한 번 마음먹고 가는 곳 까지 가보자! 라고 끊임없이 자기 최면을 걸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 저는 저 앞의 빙하, 만년설의 피오르드를 생각해 보며 다시 몸과 마음을 곧추 세워보려 합니다.

저기 저 만년설, 빙하가 암시하는 세월의 장구함에 비하면 우리네 인간의 삶은 너무나 짧습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저 빙하보다 더 위대하여야 하고 더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는 나의 주체가 있어야 하고 내가 중심에 서서 우주 만물을 바라보는 시야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곧 우주고 나는 곧 내 삶의 주체이며 내가 곧 이 세상의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친애하는 사이버 외대 학우 여러분,
이제 다시 2학기 강의실 문이 열렸습니다.
나는 오늘 하루, 바로 이 시간을 위해 뼈가 바스러지도록 진력해 보려합니다. 날과 밤을 꼬박 세우며 한 가지에 몰두하다가 훤하게 밝아오는 신 새벽을 맞이할 때의 그 기쁨의 주인공이 되어 보려합니다. 누구 앞에서라도 자랑스럽게 나의 학교, 나의 사이버외국어대학교 학생의 빛나는 전통을 만들어 가는 여러분의 대열에 저도 함께 서서 내가 쓰는 나의 나만의 사외대 역사를 써 보려합니다. 될 수록 맨 앞에 서서 풍마우습을 감내해가며 진하게, 아주 진하게 써 보려고 합니다.

사이버외국어대학교
학보 미네르바 편집장
박 복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