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초.
까까머리 초등학교 시절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거의 반세기 전의 일입니다. 부엌에서 소리도 요란하게 부엌문을 발로 밀치며 엄마가 양손을 다 써서 들고 온 밥상이 마루에 쿵! 소리를 내며 놓입니다. 엄마의 하얀 고무신 한 짝이 벗겨져 눈발 흩날린 토방 아래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엄동설한 추위 아랫목 검정 이불 속에 두 다리를 다 집어넣고 문풍지 사이로 들어온 황소바람에 시린 등을 어찌 할지 몰라‘어춰! 어이 추워!’를 연발하던 나는 엄마가 들고 온 검은 칠 밥상 위에서 미끈덩, 미끈덩 빙판 춤을 추던 음식 사발들을 바라봅니다. 검은 가마솥에서 방금 푼 하얀 밥 말고는 모든 사발들이 다 얼어 얼음들이 서걱서걱합니다. 밥상을 아랫목에 내려놓고 엄마는 서둘러 문지방에 걸친 한지 방문을 닫습니다. 검은 쇠 문고리가 추위로 쩍, 쩍 손아귀에 달라붙어 바깥의 매서운 추위를 가늠케 해 줍니다. 엄마는 말합니다. 아가, 어서 밥 먹고 학교 가야지. 추워서 큰일 났다. 옷 한 개 더 껴입고 가거라. 어서 밥 먹고 학교 가거라!

수저를 놓자마자 책보를 쌉니다. 국어, 산수, 자연, 사회 다섯 권을 가지런히 끌 맞춰 펼친 책보 위에 놓고 둘둘 말아 그 모서리 끝을 핀으로 꽂고 대각선으로 길게 삐져나온 나머지 양 끝을 잡아 왼쪽 어깨를 타고 등을 건너 앞가슴으로 해서 끈을 묶습니다. 왈, 이게 책보가방입니다. 작년 추석 때 얻어 입은 검은 바지의 끝단은 양말 목다리 끝을 훌쩍 차고 올라와 맨살이 다 드러나 보이니, 보이는 추위가 느끼는 추위보다 더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그냥 이 차림으로 십리 신작로 자갈길을 걸어 학교로 가야 합니다.

다 삭아 밑이 휑한 양철 대문을 밀치고 고샅으로 나가 학교에 같이 갈 친구의 집 앞에 이릅니다. 거의 다 해져 안이 숭굴숭굴 보이는 볏짚 울타리 안으로 친구의 이름을 부릅니다. 아무개야, 밥 먹었으면 학교 가자! 빨리 가자! 그러나 그 친구는 좀처럼 나오는 기색이 없습니다. 멋쩍어 언 땅을 몇 번 차보다가 안으로 들어갑니다. 친구는 아직도 아침 밥상 앞에서 숟갈을 들고 있습니다. 친구의 부모님들과 겸상을 한 것 같은 친구는 왠지 속이 편치 않은 것 같습니다. 방금 전 저희 아빠로부터 심한 꾸중을 들었는지 입이 넉자나 나왔고 들고 있는 숟갈은 오목한데가 안으로 뒤집히어 그 끝만 안 입술에 살짝 걸려 있습니다.

오늘은 친구에게 운이 좋은 날입니다. 내가 불쑥 들어오니 친구의 아빠는 꾸중을 접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한번만 더 그래봐라, 내 다리몽생이를 분질러 버릴 테니... 내말 알아들어?

아, 뭐하고 자빠졌어? 그 밥숟갈 든 것 마저 처넣고 빨리 학교 가잖고? 잘못이 뭔지는 모르지만 뭐, 애들 잘못 뻔 한 것 아니겠어요? 학교 갔다가 곧장 안 오고 놀다 왔다는 것.

이렇게 혼이 났지만 우리들은 집을 빠져나오자마자 키득거리며 학교에 갑니다. 방금 들은 아빠의 꾸중은 새까맣게 잊고 학교 가는 길은 즐겁습니다. 학교에 가면 그래도 뭔가 새로운 것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나면 그저 좋은 친구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꺼운 월력을 찢어 겉표지를 싼 국어 책 속에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걸 재미있게 풀어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가르침이 있기 때문입니다. 담뱃진 냄새 싸-한 그 노랜 손가락 끝으로 짚어 주시며 가르쳐 주시는 글의 뜻이 신기하기만 했기 때문입니다.

2007년.
학교에 갑니다. 종일 사무실을 들락거렸던 분들이 다 사라진 썰렁한 사무실, 직원도 다 퇴근해 버려 전화기 소리, 찻잔 소리하나 없는 적막강산 도심의 사무실. 어둠이 진즉 내려앉아 밤공기가 더욱 무거워진 창밖에 가로등이 열과 오를 맞춰 잔뜩 긴장된 의무감으로 빛을 발하고 있는 저녁시간. 호수 위에 명멸되며 이동 그림을 그리고 있는 차도 위의 자동차 전조등, 전조등, 호수 건너편 고층 아파트 층층 창문마다에서 흘러나오는 밤의 요술인 불빛, 바야흐로 밤의 시작입니다. 낮의 하루를 보내고 신선한 또 다른 하루를 만들기 위해 나는 학교에 갈 준비를 합니다.
두꺼운 유리 덮개가 있는 사무실 책상 위에 어지럽게 펼쳐져 있는 서류들을 한 움큼 집어 뒤 호수 쪽 창문틀 위에 임시로 갖다 놉니다. 의자를 좀 더 책상에 가까이 당기고, 헤드셋을 머리 위에 올립니다. 오늘 하루 종일 나와 친구가 되어 주었던 컴퓨터를 재 구동시키어 지금부터는 해야 할 일의 성격이 다름을 알게 해 줍니다. 즉 지금부터는 생업을 위한 비즈니스 차원이 아닌, 새로운 지식의 탐구 여행을 떠나는 학구 여행에 들어감을 깨우쳐 주며 조금은 경건하니 잠시 동안의 시간 멈춤으로 학생복을 대신하곤 조금 직전의 내가 아닌 또 다른 나로 새로 변신하여 책상 속 안경집을 열어 돋보기를 꺼냅니다.

고요가 깃든 밤, 낮을 활개하며 도시를 수놓던 수많은 도회인이 이미 퇴근해서 집으로 가 저녁상을 받거나 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 이 시각. 하루의 마감 전, 낮에 못 다 쓴 삶의 역사를 위해 끼리끼리 주점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거나 빈 내장을 위해 고기를 구워 집어넣고 있을 이 시각, 나는 학교에 가려고 꺼낸 돋보기 두 다리를 양 귀에 걸쳐 꽂습니다.

돋보기 두 다리에 묶이어 칠렁거리던 끈을 잡아 목뒤로 넘기고서는 오른 손을 들어 마우스를 잡습니다. 그리고 교문을 엽니다. 재잘재잘 까까머리 동무들과 어깨를 나란히 십리 신작로를 걸어갔던 반세기 전 그 등굣길을 지금은 의자에 앉아 마우스의 커서가 찾아가는 등굣길을 따라 두 눈만 움직여 학교에 갑니다.

www.cufs.ac.kr로 육중한 철재교문에 요술번호를 들이대어 문을 따고서 학교에 갑니다.

나 말고 벌써 많은 학우들이 등교해서 조용히 강의를 듣고 있는 열기 가득한 그 교실에 들어와 조용히 뒷자리에 가 앉습니다. 소리 안 나게 의자를 당기고서 존경하는 교수님의 말씀에 눈과 귀를 갖다 맞춥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