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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값
2007년 05월 01일 (화) 한국어학부장 진정란 maylanchin@cufs.ac.kr

학교로 오는 길, 라디오에서 시청자가 보낸 문자를 소개하고 있었다. "3708님, 개명하셨답니다. 김희주를 김**로. 축하해 달라구요...."

요즘은 개명도 쉽게 할 수 있나보다. 예전에는 혐오감을 주는 이름만 개명해 준다고 들었는데. 별로 나쁘지 않은 이름인데 뭣 때문에 개명을 했을까?

영화 '코르셋' 이후 여성인권에 대한 논술 문제의 소제로 자주 사용되었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 이런 장면이 있다. 개명을 반대하는 진헌에게 삼순이가 말했다. "작년에 58년생 이삼순이 이하늘로 개명했어. 58년생도 새 인생 찾겠다고 개명 신청하는데 나 이제 겨우 서른이야!" 삼순이는 희진이가 되어 인생을 바꾸고 싶었던 것이다. 김삼순은 결국 개명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삼순이가 희진이가 되었다면 과연 그의 인생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나도 가끔은 사람들이 자기 이름대로 산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나도 정란이처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정란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지. 그래서 삼순이도, 김희주도 새로운 이름을 갖고 싶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서예를 즐기시는 담임선생님이 멋져 보여 친구와 함께 학교 앞 서예학원에 다녔다. 작품을 쓰고 마무리하려면 글을 쓴 날짜와 이름을 써 넣고 낙관을 찍어야 한다. 그런데 내 이름은 획수가 많아 좁은 종이에 써 넣기가 불편했다. 그때 까다로운 한자로 이름을 지어주신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晋靜欄. 수많은 정란이 중에 아직도 ‘欄’자를 이름에 쓰는 사람을 본 일이 없다. 아버지는 첫딸을 얻고 나서 이름을 고민하셨단다. 그러다가 테두리를 그어 공간을 가르는 난간을 생각하셨단다. 난간은 텅 빈 공간을 나누기도 하고 두 공간을 이어주기도 한다. 그저 묵묵히 그 곳을 지키면서 서로 다른 두 공간을 밀착시켜주고 빈틈없이 채워준다. 그런 역할을 하라고 이름을 그렇게 지으셨단다. 그 때는 아버지 말씀을 듣고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무슨 소용이 있냐고, 예쁘지도 않고 쓰기 쉽지도 않고 게다가 놀림감이 되는 이름을 지었다고 원망을 했었다(초등학교 때 두 번 전학을 했는데 그때마다 새 담임선생님은 '진정 난 몰랐었네'라는 노래를 부르게 하셨다).

시간은 흘러 나는 '진정란' 세 글자 말고도 여러 가지 이름을 갖게 되었다. 집안에서는 '엄마, 애미, 올케, 형님, 동서, 형수님, 제수씨, 언니, 누나.....', 밖에서는 '선생님, 교수, 학부장, 상원 엄마, 사모님, 아줌마....'. 참 이름도 많다. 앞으로 나이를 어느 정도 먹을 때까지 나의 이름은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나의 이 많은 이름들은 각각 어떤 뜻을 가지고 있을까?

김춘수는 '꽃'을 통해 이렇게 말했었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는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이름은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 하나의 이름으로 나는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 내가 '정란'으로 불릴 때, '엄마'로 불릴 때, '선생님'으로 불릴 때, 나는 그들에게 과연 어떤 의미가 되는 것일까? 나는 과연 그 이름에 알맞은 빛깔과 향기로 이름값을 충분히 하고 있는 것일까?

'정란'이라는 이름으로 40년을 살다보니, 나는 어느새 '靜欄'이 되어 있다. 사람과 사람, 한국인과 외국인, 동양과 서양, 그 사이에 서서 두 세계를 연결하고 이어주는 일을 하고 있다. 이 정도면 이름값을 어느 정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난 나의 다른 이름에 대해서는 얼마정도의 값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데 학교에 도착했다. 학교에서 나를 기다리는 이름들. ‘진 교수, 학부장님’. 아직은 내 몸에 맞지 않는 듯 들리는 이름들이지만 그래, 내 이름을 겸허히 받아들이자. 그리고 내 이름값을 톡톡히 하도록 오늘도 노력하자. 알프레드 디 수자(Alfred D. Suja)가 들려준 시처럼 그렇게.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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