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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유럽과 나
2007년 08월 01일 (수) 한국외국어대학교 김철민 교수 kminyugo@hanmail.net

몇 년 전 에스토니아에서 열리는 국제학술대회에 갔을 때 일이다. 당시 그 자리에는 한국에서 오신 ‘한국 동유럽 발칸 학회’의 여러 교수님들과 대학원생들, 동유럽에서 오신 여러 외국인 교수님들 그리고 현지의 연구자들이 한데 모여 동유럽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논하는 학술대회가 열릴 예정이었다. 이틀간의 다소 벅찬 학술대회 일정을 마치고, 마지막 하루의 반나절은 에스토니아 시내를 관광하고 그곳의 음식 맛을 즐기는 달콤한 휴식 일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버스의 앞자리에 자리 잡은 한국인 가이드 한 분이 버스 앞 유리창에 비친 학회 명을 보고, “한국 동유럽 발칸 학회가 무엇을 연구하는 학회인지 궁금하다?”라는 뜻을 내비쳤다. 당시 나는 그 분에게 “한국에서 동유럽 지역의 발칸포를 연구하는 학회입니다”라고 말해서 학술대회로 지쳐 계셨던 여러 분들에게 작은 웃음을 선사한 적이 있었다.

이처럼, 발칸유럽은 우리에겐 아직도 다소 생소하고, 어색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지역이다. 실제, 국내 많은 분들에게 그곳의 지리적 위치와 문화, 사회상에 대해 재주껏 설명을 한다고 해도 이해에 어려움을 느끼시는 걸 눈치껏 알아차릴 수 있다. 그래서 가끔은 내 설명력의 부족과 능력을 탓할 때도 있다. 난 이 지역을 설명할 때 복잡한 종교, 문화적 혼재를 의미하는 ‘종교와 문화의 모자이크 지역’이란 애칭과 함께, ‘신비한 매력을 지니고 있는 지역’, ‘유럽속의 또 하나의 유럽’등의 용어를 마치 단골 메뉴처럼 사용하고 있다.

사실 발칸유럽의 문화적 양상과 현상들을 고려해 볼 때, 발칸유럽 지역을 대표하는 한 마디는 ‘종교와 문화의 모자이크’란 표현일 것이다. 발칸유럽이 이렇게 불리게 된 배경에는 로마의 지배와 크리스트교의 보급, 동․서로마 분리 이후 서로마 교회(로마 교회)와 동로마 교회(콘스탄티노플 교회)의 분열에 따른 ‘가톨릭’과 ‘정교’의 성립, 그리고 14세기말 이슬람 제국인 오토만 터키의 발칸유럽 진출과 함께 확대된 ‘이슬람교’ 도입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문화권역상의 특징과 더불어 발칸유럽은 오래 전부터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주요 통로에 위치해 있으면서 그 지정학적 중요성이 인정되어 왔었고, 이러한 배경은 이 지역을 통상 ‘유럽의 관문’으로 지칭하게 하였다. 실제 발칸유럽은 고대 이래로 여러 민족들의 전략적 요충지로서 유럽, 러시아, 소아시아 열강들의 각축장이 되어 왔었다. 그 결과 20세기 말에 들어와서는 발칸유럽 내 복잡한 문화적, 종교적 혼재와 사회주의 이념 쇠퇴에 따른 민족주의 성향 증대로 인해 세르비아니즘을 비롯한 소패권주의 성향의 확대와 보스니아 내전, 코소보 전쟁 등 여러 대규모 유혈 분쟁을 일으키는 단초를 제공하게 된다. 이러한 배경을 기초로 발칸유럽은 다른 유럽 지역들과는 다른 독특한 그들만의 사회와 문화를 구축해 왔다. 이런 점에서 발칸유럽은 ‘또 하나의 유럽’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차별성이 바로 발칸유럽을 흥미롭게 바라보게 하는 매력이 되고 있다.

내가 발칸유럽과 인연을 맺게 된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남들이 다 하는 것, 남들의 뒤를 그대로 답습해 따라가는 것이 별로 재미가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대학 진학 시절 담임선생님의 반대를 무릅써야만 했고, 공부를 천직으로 삼기로 결정하고 이 지역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겠다는 뜻을 내비쳤을 때 부모님의 걱정스런 염려를 들어야만 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만 해도 동유럽 그것도 그 중 일부지역인 발칸유럽에 대한 국내에서의 인식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니 어른들의 그런 걱정은 어쩌면 당시로서는 당연한 조언이자 충고였는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습지만, 난 이러한 반대와 걱정스런 우려에 대해 ‘용의 꼬리가 되느니, 닭의 머리가 되겠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듯하다. 지금도 그 소신에는 변화나 후회가 없다.

운이 좋게도 이 지역의 전문가로 인정받게 된 지금도, 난 어릴 적부터 지녀왔던 ‘왜(Why?)’라는 궁금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 많은 학문중 역사를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역사는 우리에게 항상 ‘왜’라는 궁금증을 유발시켜주는 매우 재미있는 학문이다. 다만 그것을 전달하는 과정상의 문제점, 즉 단순 암기식 교육으로 인해 역사를 그리고 사회, 문화에 대한 이해를 일반인들에게 어려운 학문으로 내몰게 하는 것은 아닌 지 반문할 때가 많다. 과목의 성격상 서로간의 차이가 있겠지만, 나의 수업에 대한 평소 소신은 “수업은 수강생들에게 ‘왜’라는 궁금증과 흥미 그리고 재미를 불러일으키는 데 그리고 이것을 도와주고 조직화 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면 수강생들 중 상당수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왜’라는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그리고 그들의 흥미와 재미를 지속하기 위해 스스로가 더 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학습을 하게 될 것이다.

난 발칸유럽의 사회와 문화를 체험하러 오시는 분들에게 수업에 들어가기에 앞서 과거 고등학교 때와 같은 공부와 학습이라는 무거운 부담감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는 흥미차원에서 수업에 임해주기를 수차례 당부하고 있다. 즉, ‘머리로 외우는 수업이 아닌 가슴으로 느끼는 수업’이 되었으면 하는 게 나의 바람이다.

발칸유럽과 나, 난 오늘도 미지의 세계인 또 하나의 유럽, 발칸유럽의 매력과 신비로움 속으로 즐거운 여행을 떠나보도록 할 것이다. 여러분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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