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21.2.26 금 15:37
> 뉴스 > 기획마당 > 기획칼럼
     
독도가 대한민국의 땅인 이유, 당신은 알고 있습니까?
2008년 08월 01일 (금) 이은경 기자 mhek8586@naver.com


당신은 독도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최근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로 대한민국 국민은 독도영유권문제 때문에 홍역 아닌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 독도라고 검색을 해보니 ‘독도가 우리 땅인 이유’라는 연관 검색어가 올라왔다. 또 그 바로 밑에 ‘독도가 일본 땅인 이유’라는 검색어가 따라붙어 있었는데 그걸 본 난 가슴 한편이 뜨끈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문제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었음에도, 나는 독도가 어째서 우리나라의 땅인지 정확하게 말할 수 없었다. 이유를 말하라고 한다면…. ‘우리 땅이었으니까.’라는 억지 같은 주장뿐이었다. 지금 당장 ‘독도가 왜 너희 땅이냐?’라고 외국인이 묻는다면 우리는 과연 제대로 말할 수 있을까? 독도가 왜 우리 땅인지 간단하고 정확하게 알아보자.

   
▲ 독도 주위를 항해하는 광개토대왕함

첫 번째, 신라시대 때부터 진흥왕이 우산국(울릉도, 독도포함)을 이사부라는 장수를 보내면서 점령하고 그 부속 섬인 독도를 얻었다는 기록이 있다.

두 번째, 9세기 우리나라 동해에서 포경했던 서양인들이 기록한 항해일지에 울릉도와 독도를 한 지도에 넣고 통칭해서 기록했으며 울릉도를 기준으로 독도의 위치를 설명해 두 섬은 하나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준다. 프랑스 지리학자 당빌의 『조선왕국전도』에서 독도를 한국 영토로 표시했다. 또한, 일본 고지도에서도 울릉도와 독도는 늘 같은 색으로 칠해 울릉도와 독도는 형제의 섬으로 인식했다.

세 번째, 안용복은 조선시대 숙종 때 일본 어민들이 울릉도에 출어하는 것을 항의하였고 일본 막부로부터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의 것이라는 외교문서인 서계를 받아냈다. 한국의 1900년 칙령 제41호에는 근대 국제법에 따라 울릉도와 석도(독도)를 울도군이 관할한다는 내용의 지방제도 개정령이 포함되어 있다. 고려사 지리지의 동계 울진현조, 세종실록지리지 강원도 울진현조, 신증동국여지승람 강원도 울진현조에서도 “우산도·울릉도 가현의 정동 바다 한가운데 있다.”라고 표현했다.

네 번째, 일본 관리 사이토호센이 17세기에 쓴 보고서에는 "일본의 서북 경계는 온슈(은주), 지금의 오키섬으로 삼는다."라는 글이 남아있다. 19세기 일본 메이지 정부 공문서에서도, 일본 내무성과 일본 최고국가기관(태정관)도 독도·울릉도를 한국 영토로 인정했다.

다섯 번째, 연합국이 1946년 1월 독도를 한국에 반환하는 군령을 발표했고 연합국의 『구 일본 영토 처리에 관한 합의서』에서 ‘독도는 한국 영토’라고 규정지었다. 연합국의 샌프란시스코 ‘對일본강화조약’에서 독도는 빠져 있다. 유엔군도 독도를 한국 영토에 포함했다.

여섯 번째, 1723년 프랑스에서 제작된 고지도와 1782년 영국 왕 조지 3세의 명령에 따라 만들어진 아시아 고지도에서는 동해가 ‘한국해’로 표기되어 있으며 미국 남가주대학에 있는 고지도 170여 점의 대부분도 동해를 한국해로 표기하고 있다.

일곱 번째 영토라 함은 현재 거주자(점유)가 있으며, 국기가 게양될 수 있는 장소 등을 말한다. 독도는 현재 우리나라 경찰이 점검하고 있으며, 국기도 우리나라 태극기를 게양 하고 있다.
 

간단하게 알아보았음에도 독도가 대한민국의 땅이라는 것을 알리는 이렇게 많은 이유가 있는데, 왜 일본인들은 독도(일본인들은 다케시마라고 명명함.)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걸까? 그들의 주장은 이렇다. (일본 측 주장은 일본의 다케시마 사이트에서 배포되고 있는 것을 가지고 왔다.)

첫 번째, 다케시마는 역사적으로 보아도 일본의 영토이다.
다케시마가 발견된 정확한 연도는 확실치 않지만 늦어도 에도시대 초기에는 일본인에게 알려졌다. 1618년 무렵부터 요나고의 오야진키치(大谷甚吉)와 무라카와이치베(村川市兵衛)라는 사람이 막부의 허가를 받아 울릉도(당시에는 다케시마로 불리었다.)로 건너가 전복, 강치 등의 어렵 활동과 죽목 벌채 등을 하였다. 이 울릉도로 가는 도중의 기항지로써 또 어획지로써 다케시마(당시는 마쓰시마 불리었다.)를 이용했다. 1661년 무렵부터는 마쓰시마(오늘날의 다케시마)에 정식으로 막부의 허가를 받고 도항하게 되었다.
그 후, 에도막부는 조선과의 분쟁으로 말미암아 1696년 울릉도 도항을 금지하였으나, 마쓰시마(오늘날의 다케시마)에 대해서는 도항을 금지하지 않았다. 1836년에 하마다의 이마즈야하치에몬(今津屋八右衛門)이라는 사람이 금령을 어기고 울릉도에 건너간 이유로 처벌받았지만, 그 재판기록을 보면 마쓰시마에 가기 위해 바다를 건넜다고 나와 있다. 마쓰시마에 대한 지식은 서적이나 지도에 기록되어 에도시대 내내 계승되었다.

메이지 시대에 접어들어 일본인의 울릉도 도항이 다시 시작되었다. 많은 어민이 울릉도로 가게 되었고 그 도중에 다케시마를 거쳐 갔다. 메이지 20년대 말부터 오키섬의 도민들이 다케시마에서 전복, 강치 등의 어렵에 종사했다.

두 번째, 국제법으로 비춰보아도 일본 영토이다.
1904년 오키섬의 주민 나카이요자부로(中井養三郎)라는 사람이 다케시마에서 강치 조업이 가능하도록 일본 정부에 다케시마 영토편입 및 차지를 신청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1905년 1월 28일, 각료회의를 통해 이 섬을 정식으로 다케시마라고 명명하고, 본나 소속, 시마네현 오키관할 소관으로 결정했다. 이에 기초하여 시마네현 지사는 같은 해 2월 22일,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를 통해 그 내용을 공시했다.
더욱이 같은 해에는 오키노쿠니욘군(隠岐国四郡)의 관유지(官有地)대장에 등록, 어업단속규칙에 따라 강치 조업을 허가하고 가설 감시대를 세웠으며, 지사 시찰이 행해졌다. 이듬해인 1906년에는 시마네현 제3부장들이 현지실태조사를 시행했다. 또, 그 후로도 어업자들에게 관유지의 대부와 사용료를 징수하는 등 행정권의 행사가 계속되어왔다.

국제법상 영토취득의 요건은 국가에 의한 해당 토지의 실효적 점유이다. 일본은 다케시마에 대한 역사적인 권원을 가지고 있고, 20세기 이후의 조치에 의한 근대국제법상의 요건도 완전히 충족시키고 있다.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
분명히 독도는 우리 땅이다. 하지만, 우리가 ‘독도가 우리 땅이다.’ 할 가장 근본적인 근거를 보통의 한국인들은 모른다. 이 기회를 틈타 일본은 역사 교과서 등에서 독도를 다케시마로 만들어버린다. 이제는 우리가 손 놓고 뒤에서만 바라볼 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선 우리는 독도가 우리 땅인 확실한 증거를 알아야 할 것이고, 그들의 주장을 자세히 파악하여 조목조목 그 논리를 무너뜨려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숙제는 정부와 함께 세계에 독도를 알려야 할 것이다. 세계의 여러 국가가 독도를 독도가 아닌 다케시마로 인식하지 않도록, 이제는 우리가 우리의 독도를 정확하게 알려야 한다. 가수 김장훈 씨의 독도 광고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지금도 독도에는 대한민국의 태극기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 더 자세한 사항은 http://www1.pref.shimane.lg.jp/contents/soumu/take2.html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미네르바(http://minerva.cufs.ac.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청소년보호정책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로 107 사이버한국외국어대학교(02450) | Tel) 02-2173-2580 Fax) 02-966-6183 | 청소년 보호 책임자 : 조기석
Copyright 2004 Cyber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nerva@cufs.ac.kr